인천 유나이티드의 허정무 감독이 인천 팬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속 시원히 밝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구단의 속사정부터 자세한 내용을 모두 답하며 팬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져달라”고 했다.
허정무 감독은 25일 저녁 7시 승기연습구장에서 열린 인천 구단 프런트와 인천 서포터즈 미추홀보이스와의 친선 경기를 마치고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팬들은 한껏 땀을 흘리고는 둘러 앉아 구단에서 마련한 치킨, 피자, 맥주 등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허정무 감독을 보자 박수로 맞이했다. 바쁜 스케쥴 때문인지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허정무 감독도 팬들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했다.
허정무 감독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지난 20일 강원전 0-0 무승부 이후 허정무 감독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했던 팬들과 ‘공론’을 펼쳤다. 최근 성적, 숭의축구센터 건립 문제, 승부조작사건 등 허심탄회한 대화들이 오갔다.
말문은 허정무 감독이 열었다.
허정무(이하 허): 최근 성적이 안 좋은 것에 대해 면목이 없다. 모든 것은 선수가 아닌 내 책임이다. 책임질 용의가 있다. 하지만 팬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지난 강원전때 나를 기다린 걸로 아는데 그것에 대해 전달을 받지 못했다. 피한 게 아니다. 오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시작해보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좋은 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오늘도 여기 오기 전에 서구청에 들러서 상공회의소장을 뵈었다. 나는 팀 운영뿐 아니라 시장, 부시장에게 구걸하고 있다. 말은 안 해도 여러가지로 힘들다. 희망을 갖고 인천에 왔는데 시민구단의 한계를 느낀다. 내 변호가 아니라 여러분이 아셔야 할 점이다.
인천은 태생적으로 잘못 태어났다. 시민구 공모하고 200~300억 원으로 팀을 만들었다. 그러나 1년, 3년 후를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다 지금에 이르러서 돈이 다 떨어졌다. 어떻게 할 건가? 계속 구걸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작년 제대로 선수를 지원하지 못했다. 선수들 승리 수당이 늦어지니까 사기가 떨어졌다. 지난 6월까지는 선수들 급여 걱정을 했다. 임시방편으로 둘러치기, 메치기를 해야 했다. 데얀, 라돈치치, 마니치, 드라간, 김치우, 이정수 등이 있던 시절 인천이 좋았다는 걸 안다. 그런데 당시 왜 그들을 내보내야 했을까? 재정 상태 때문이다. 이런 것도 알아야 한다.
성적도 경쟁력의 문제다. 권총으로 기관총을 이길 수 있나? 강수일을 트레이드해서 그나마 현금과 선수를 얻었다. 지금까지 인천에서 두 명이나 올림픽 대표에 뽑힌 적이 없다. 한교원, 박준태의 연봉이 얼만 줄은 아나? 번외지명으로 14명을 뽑았는데 충분치 않다. 여러가지로 힘들다.
선덜랜드가 몇 개월, 1~2년 안에 맨유가 되기를 바라기는 힘들다. 10경기 중에 우리는 8무 2패를 했다. 아까운 경기, 내용면에서 잡을 수 있었던 경기가 50% 정도 된다. 하지만 이것도 실력이다. 인내를 가져야 한다.
결코 일부 팬들이 얘기하는 대로 비기기 위해 경기를 하지 않는다. 비디오를 보라. 비기기 위해 축구를 하는 건 없다. 져도 좋으니까 공격축구를 하라고? 축구란 것은 수비와 공격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그게 무슨 축구인가? 그렇다고 우리가 수비에 치우쳐서 경기를 하진 않는다. DVD를 구할 수 있으면 한번 보라.
앞으로 인천의 비전이 무엇인가 꼼꼼이 봐달라. 이 상태로 가다간 팀 꾸리기 힘들다. 이대로는 우리 구단의 미래가 없다. 그래서 기획한 게 축구센터 건립이다. 나는 새벽 6시 40분에 이곳에 도착해 일을 시작한다. 팬들도 깊은 애정을 가져달라.
팬 질문(이하 팬): 허정무 감독님이 원하는 전력은 어느 시기에 볼 수 있나?
허: 내년이면 분명히 틀려진다. 요청한 것이 될 지 안 될지 모르겠는데 김정우가 제대하면 FA로 풀린다. 나는 위에다가 김정우, 김남일, 이천수 등 경험 많은 선수 3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충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을 영입하려면 돈이 든다. 그들이 백의종군하지 않는 이상 쉬운 일은 아니다.
돈이 있어야 데려올 수 있다. 좋은 선수 영입을 위해선 지출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방팔당 뛰어다니는 거다. 올해 아시다시피 인천은 강팀을 두려워하지 않는 팀이 되었다. 울산, 서울, 성남, 포항 전에서 모두 그랬다. 전북전에서 그나마 수중전 2-6 패배가 있었는데 팬들이 내용이나 과정을 보나?
선수들은 요즘 부담, 스트레스를 받는다. 강원전 긴장 안 해도 되는 경기였다. 최하위 팀이라는 이유로 이겨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경기가 말렸다. 아직 약팀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팀은 되지 못했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거나 영입이 되야 한다. 시간을 갖고 기다려달라.
팬: 선제골에 무너지고 상대 뚫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예전 인천 특유의 끈끈함이 사라진 것 같다.
허: 팀이 무기력하게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팬 분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옳을 수 있다. 일리가 있는 얘기로 받아들이겠다.
팬: 인천에 올 때 송영길 구단주와 어떤 약속을 했었나?
허: 두 가지다. 첫째, 자립할 수 있는 구단을 만들겠다는 것. 둘째, 인천 미래를 위해 축구센터 건립을 하겠다는 것이다. 축구센터의 경우에는 계속 노력을 하고 있다. 헌데 잘 아시다시피 공무원의 세계가 조금 늦다. 시간이 필요하다.
팬: 언급한 선수들이 영입된다면 허정무 감독님이 생각하는 팀이 완성되는 건가?
허: 팀에는 완성이라는 게 없다. 확실한 건 전술적으로 나아질 것이다. 그 외에 지금은 커나가는 선수들, 필요한 선수를 키우고 있다. 동시에 FA로 풀리는 선수를 겨울에 영입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지금 선수들과 접촉하면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정보수집 정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팬: 언론 보도에 나간 인터뷰를 보면 종종 선수 탓을 한다. 명장이라면 감독 탓을 해야 맞는 게 아닌가?
허: 나는 누구보다 선수 탓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얘기하는 부분이 아마 ‘누가 빠져서 타격이 컸다’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할 때면 꼭 ‘핑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랑 싸우자고 나를 여기 세운 건 아니지 않나. 기사를 다시 한번 검색해달라.
팬: 경헝 많은 선수를 영입하려면 지원이 필요하다. 혹시 비용적인 측면에서 외국인 쿼터제를 포기할 생각도 있나?
허: 그런 것도 연구를 해봐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 선수 데려오는 돈으로는 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앞서 김남일, 김정우, 이천수를 언급했다. 나는 솔직히 이영표도 데려오려고 만난 적이 있다. 헌데 이미 서울과 약속을 했더라. 서울이 아니면 다른 어느 K리그 팀으로도 가지 않겠다고. 그런 선수 수급하기는 쉽지가 않다. 외국인 쿼터를 줄인다 해도 차이가 난다.
팬: 그 선수들 포지션이 전부 미드필더다. 허정무 감독님이 포백을 쓴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인천에 필요한 포지션은 윙백으로 보인다.
허: 그래서 여름 이적시장에서 김한섭을 보강했다. 어디 괜찮은 선수가 또 있으면 추천해보라(웃음). 감독일을 하면서 느낀거지만 선수를 데려오는 것만큼 힘든 게 없다. 요새는 선수 몸값이 엄청 높다. 영입에 어려움을 느낀다. 작년 우리 팀은 반절 이상 선수를 바뀌었다. 혹자는 ‘너무 많이 바뀐 게 아닌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손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선수를 보는 눈은 다 틀리다. ‘아, 이 선수 괜찮다’하는 선수도 영 아닌 경우도 나오곤 한다.
팬: 인천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걸렸다. 이것을 알고 트레이드 한 게 아닌가? 인천 구단에선 정말 몰랐나?
허: 소문이라는 게 참 무섭다. 유병수가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설을 듣고 3~4번을 만났다. 병수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남자로서 약속을 할 수 있나?’라고 물어도 ‘믿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증거를 좀 달라, 연맹에 제출하고 언론에 공개하게’라고 했을까. 말이란 게 참 무섭다. 만약 승부조작이 헛소문이라면 그 선수들이 받는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윤기원의 경우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직까지 왜 그렇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선수 생명에 오점을 남긴다. (팬: 연루된 선수는 우연이라는 얘긴가?) 그렇다. 작년에 지켜보면서 조작한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내 명예를 걸고 얘기하겠다. 그 선수들은 작년 뒤늦게 들어오고 나서 훈련 태도를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일찌감치 마음 속으로 정리해 이적시켰다.
팬: 개인적으로 월드컵 원정 16강을 이루신 유능한 감독님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언론에 비춰지는 것 때문에 인천이 한번 더 언급되는 것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세 가지만 묻겠다. 임중용, 김학철 등 소위 레전드들에게 장기적으로 ‘이런 건 해주겠다’ 이런 자세가 없어서 아쉽다. 또 축구 센터와 관련되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선수 탓을 하지 않으셨다고 하는데 언론에 선수 얘기를 꺼내면 팬들은 그렇게 느껴지는 것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다.
허: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앞으로는 선수 탓 하는 일 없도록 하겠다. 문학 경기장의 경우 시야가 멀다. 벤치에서 선수들의 조그만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전용구장은 틀리다. 몇 십 %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예전에 뛰었던 선수들에 대한 배려를 얘기하셨는데 나는 감독이다. 인사권에 대한 권한이 없다. 개인적으로 구단에서 두 선수에게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게끔 충분히 많은 배려를 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팬: 감독을 맡은 지 언 1년이 되었는데 본인의 성과를 본인이 평가한다면? 또 비기는 것과 지는 것 중 뭐가 더 아쉽나?
허: 남들은 ‘많이 비긴다’, ‘못 이긴다’, ‘차라리 그럴 거면 지는 게 낫다’ 등 말을 한다. 지는 건 죽기보다 싫다. 비기는 게 낫고 그것보다는 이기는 게 좋다. 사람들 얘기와 달리 우리 인천은 지지 않을 정도의 꾸준함을 갖고 있다. 팀 색깔이 모 아니면 도는 아니다. 누가 뭐래도 지는 건 싫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이길 가능성이 있어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내 평가라…. 청문회의 기분이 든다(웃음).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성적이 안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팀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직접 팀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그렇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