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은 축구 자체다
스포츠에서 감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어느 경기든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됨에 따라 감독의 지략과 지도력이 경기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올 한해 스포츠계에서 뛰어난 지략과 지도력으로 팀을 이끈 감독을 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심재철 기자
▲ 인천 장외룡 감독
ⓒ2006 남궁경상
인천 유나이티드 FC 장외룡 감독은 지난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가능하면 인천에 남고 싶다고 밝히면서 "환경적으로 개선할 점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될 것인지, 감독을 맡을 여건이 되는지 등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K-리그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2004년부터 그를 지켜본 팬의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로는 반가운 소식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픈 이야기였다.
"감독 맡을 여건이 될지..."
그의 거취가 결정된 바는 없다. 다만 그라운드에서 뿜어나오는 열정과 마찬가지로 펄떡거리는 가슴에서는 분명 그를 붙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다시 바라보면 그를 (선수 구성면이나 팀 살림면에서 훨씬 넉넉한) 큰 물로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그도 사람이고 팬도 사람이고 축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선수 구성면으로 봤을 때 교체할 선수가 별로 없다. 이는 단지 교체 선수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베스트 일레븐의 경기력을 더 강하게 만드는 백업 멤버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인천 구단의 안종복 단장이 16일 "구단이 허락하는 재정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을 밝히며 재계약 의지를 천명했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2004년 후반기 감독 대행 역할부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아쉽고 아깝더라도 떠나는 그의 등에 대고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장외룡의 과거는?
장외룡 감독의 선수 시절을 기억하는 '올드 팬'들은 1983년 한국 프로축구 원년을 떠올릴 것이다.
부산 아이파크의 전신인 대우 로열즈에서 왼쪽 수비수로 활약하던 장외룡 선수는 조병득(수원 GK코치), 이강조(광주 감독), 박성화(전 청소년대표팀 감독) 등과 함께 최고의 11명 안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원년 우승은 조병득이 문지기로 활약했던 할렐루야에 빼앗겼지만 대우를 2위에 올려놓은 주역이었고 이듬해인 1984년에는 팀을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았다.
1979년부터 약 5년간 국가대표 수비수로도 이름을 날린 장외룡은 특히 던지기 공격을 지능적으로 잘 해냈고 측면에서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1997년 대우로열즈 수석코치 자리에서 우승 경험이 있지만 아직까지 감독의 자리에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 심재철
살림 넉넉하지 못한 시민구단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제대로 된 연습구장, 클럽하우스 하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잔디 연습장을 구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 했던 구단의 감독이기에 지금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감독을 맡을 여건이 되는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일까? 좀 비꼬아 생각하면 지금까지 그는 감독을 맡을 여건이 안 되는 팀을 이끌었던 것이다.
2005년 K-리그 통합순위 1위(챔피언결정전 준우승), 2006년 FA컵 4강
창단 첫 해(2004년)에 몸담았던 최태욱이나 알파이 외잘란(터키) 등 이름난 선수들도 떠나고 난 다음에 이룬 장외룡 감독의 대표적인 성과다.
특히 올 시즌에는 FA컵 도전을 통해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를 내세워 선수들은 물론 홈팬들의 마음도 한 곳에 모을 수 있었다. 거기에 정규리그 끝무렵까지 플레이오프 티켓 마지막 한 장을 놓고 '울산, 서울'과 함께 후회없는 승부를 펼친 것은 아쉽게 끝나버린 드라마의 여운까지 느끼게 해 주었다.
장외룡의 삶은 '축구'
인천의 장외룡 감독은 1999년 일본축구협회에서 주는 공인 S급 지도자 자격을 따냈다. 국내 지도자들 중에서 보기 드문 이력이다. 단순히 자격증만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J-리그에서도 베르디 가와사키(현 도쿄 베르디 1969), 콘사도레 삿포로 감독을 거치며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진정한 축구 인생은 인천 유나이티드 FC 수석 코치로부터 시작되었고 베르너 로란트 초대 감독에 이어 본격적으로 감독 역할을 맡은 2005년 그 꽃을 피웠다.
▲ 지난 5월 31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전남과의 경기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벤치를 지키고 있는 장외룡 감독(맨왼쪽).
ⓒ2006 심재철
정규리그 전·후기 스물네 경기를 뛰며 13승 6무 5패(45점, 36득점 26실점)를 거두며 통합 우승팀의 자격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것. 안타깝게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이천수, 최성국, 이호, 김정우, 유경렬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비한 울산을 만나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지만 겨우 두 번째 도전 만에 '시민구단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단지 한두 차례의 성과만 놓고 그를 최고의 감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팀을 알고 상대를 알고 뚜렷한 목표를 세울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쓰는 라커룸에 써 있는 낙서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기 7승 3무 2패, 후기 6승 3무 3패. 감독님은 점쟁이? 희한하네!"('파란-공포의 외룡구단', 중앙 M&b movie 중에서)
그는 선수들에게 목표로 제시한 것을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이룬 주인공이다. '철저한 분석가'로서의 장외룡 감독을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다. 그가 쓰고 나오는 낡은 흰 모자에는 여러 글귀가 적혀 있다.
'인내, 노력, 희생'이라는 세 마디도 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말이지만, 'My Life is Soccer'라는 표현은 '감독 장외룡'을 대변해준다. 아울러 이 말은 인천 유나이티드 FC 홈경기 공식 프로그램 'The United' 앞 부분에 실리는 감독 칼럼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의 '비디오 테이프', 선수를 변화시키다
그는 컴퓨터의 다른 기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지만 비디오 자료를 만드는 능력은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90분 경기 장면을 녹화해서 10분 분량의 비디오 자료로 압축하는 일은 감독으로서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훈련일지, 메모 기록 등 그의 방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열린 자료실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렇게 자신의 선수들 하나하나의 장단점을 보여줘 실제 경기에 녹아들도록 이끌며, 쉬거나 잠 잘 시간까지 쪼개어 상대팀 분석까지 해내기 때문에 축구를 '자신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MF 노종건(뒤쪽)은 늘 저런 모습이다. 지난 9월 16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2006 심재철
이는 노종건이라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경희고-인천대를 거쳐 인천 유나이티드 창단 멤버로 뛰고 있는 노종건은 축구 선수로서 그리 대단하지 않은 체격 조건(175㎝/70㎏)에도 불구하고 상대팀 핵심 선수를 꽁꽁 묶는 중요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선수 개인의 노력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분석 자료를 바탕에 둔 감독의 눈은 노종건을 몰라보게 바꾸었다.
2005년까지 노종건은 상대 선수를 물고 늘어지는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공격 전개 능력은 보잘 것 없었다. 가운데 미드필더로 뛰며 상대 공격을 잘 끊었지만 자신의 발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공격이 거칠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감독의 세밀한 눈은 압축된 비디오 자료를 통해 한 선수를 몰라보게 성장시키고 있다. 2006년 시즌 노종건의 발끝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과감한 드리블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축구는 미드필더가 강해야 팀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보였다.
그 덕분에 왼발잡이 김치우와 세르비아에서 데려온 드라간 믈라다노비치를 가운데 세워두고 제2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전남에서 데려온 장경진을 든든한 세 명의 수비수 중 하나로 안착시킨 점, 왼쪽 옆줄을 따라 주로 움직이던 수비수 김치우를 가운데 미드필더로 훌륭하게 바꿔놓은 점, 말썽꾸러기 라돈치치를 쓸 만한 골잡이로 길들인 점도 장외룡 감독의 지혜로운 눈과 헌신적인 노력을 잘 입증해주는 것이다.
▲ 인천 장외룡 감독의 작전지시
ⓒ2006 남궁경상
장외룡의 '비상'
2006 한국 프로축구 시즌은 K-리그 챔피언 결정전(성남 vs 수원)과 FA컵 결승전(전남 vs 수원)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장외룡 감독은 다른 감독에게는 없는 2006-2007 시즌이 펼쳐진다.
국내 최초로 K-리그(인천 유나이티드 FC)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飛上)>(임유철 감독, (주)이모션 픽쳐스 제작)이 다음 달 개봉되기 때문이다. 그 마당이 초록 그라운드가 아니라 회색 영사막이지만 감독 장외룡의 축구 이야기가 또 어떤 감동을 팬들에게 선물할지 기다려진다.
그의 흰 모자 챙에 적혀 있는 것처럼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며 '인내'하고 '노력'하는 장외룡은 분명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 지도자로서의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 꽃 뒤에 열리는 열매는 월드컵대표팀 감독의 모습으로 영글지 않을까 한다.
/심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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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스포츠뉴스 메인에 떴네요...ㅠㅠ
감독님..... 여건이 되시면 남아주시는거죠??
여건.... 구단에서 꼭 감독님 잡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