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시즌을 앞둔 시점, 인천 유나이티드가 풀어야 하는 가장 큰 숙제로 꼽힌 부분은 바로 ‘진공청소기’ 김남일이 전북 현대로 떠나며 생긴 중원의 공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메울 것인가와 관련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즌이 시작된 현 시점. 인천의 새로운 중원사령관으로 자리매김하며 서서히 김남일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는 이가 있으니, ‘승짱’ 배승진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7년간 J리그에서의 활약하며 습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K리그에서 새롭게 도전에 나선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배승진 프로필
이름 : 배승진 생년월일 : 1987년 11월 3일 신체조건 : 182CM 78KG 등번호 : 4 포지션 : MF 출신교 : 신산초 - 오산중 - 오산고 - 울산대
2007 요코하마 FC 2008 자스파 쿠사츠 2009-2011 도쿠시마 보르티스 2012-2013 요코하마 FC 2014-현재 인천 유나이티드
다음은 배승진 선수와의 일문일답. - 배승진 선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일단 인터뷰를 시작하기 앞서 가장 먼저 축구 팬 여러분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네, 안녕하세요. 인천 유나이티드 미드필더 배승진입니다.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고요. 중앙 수비수도 소화 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일본 J리그에서 7년간 활약하다가 올해 인천에 입단하게 되면서 K리그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지금 전북 현대에서 활약 중인 권순태 선수가 제 친척 형이에요. 그리고 (권)순태형의 동생인 순학이가 저랑 동갑인데, 둘이서 항상 순태형이 축구하는 모습을 몰래 가서보고 그랬거든요. 그때 문득 ‘아, 나도 축구를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부모님께 막 울고불고 떼를 쓰면서 축구 시켜달라고 했죠. 부모님께서는 처음에는 극구 반대하셨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에는 해보라고 허락해주셔서 그렇게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울산대에서 바로 J리그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 대학교 2학년 때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어 수원컵을 뛰었을 때요. 당시에 일본 관계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경기를 지켜봤는데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 입단 제의를 건네더군요. 그때 한창 제가 홍명보 감독님을 상당히 좋아했어요. 홍 감독님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일본 J리그 시스템에 대해 관심을 마침 갖고 있던 터였거든요. 그래서 제의를 받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보자는 마음으로 일본행을 전격 결정하게 되었죠.
- 대학교 2학년 때 일본으로 가게 된 거라면 학교 측에서 반대가 상당히 심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 반대요? 엄청 심했죠. 그때는 그냥 뒤는 생각 안하고 앞만 보고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가 1, 2학년 때 청소년 대표팀에 계속해서 차출되느라 대학교 시합에는 거의 나서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일본으로 간다고 하니, 당시 사령탑을 맡고 계셨던 김기남 감독님께서 많이 황당하셨던 거죠. 그때 김종건 코치님(현 홍익대 감독)께서 보이지 않게 제가 일본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게 많이 힘써주셨어요. 그렇게 정말 어렵게, 어렵게, 학교 측에 양해를 구하고 일본 J리그로 가게 되었어요.
- 아, 그렇군요. 그렇게 어렵게 일본으로 건너가셨는데, 무려 7시즌 동안 활약했습니다. 솔직히 그 정도까지 오랜 시간 일본에서 활약할 것이라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했었나요?
= 아니요, 저도 솔직히 일본에 그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습니다. 그저 발밑에 떨어진 불부터 꺼보자는 생각만 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시간은 금세 흘러가더라고요. 무엇보다 음식 문화에 빠르게 적응했던 부분이 큰 요인 중 하나가 아닌 가 싶어요. 제가 특이하게 청소년 대표시절 유럽, 동아시아, 서아시아 등 어느 나라에 가도 못 먹는 음식이 없었어요. 일본 음식도 마찬가지로 금방 제 입맛에 맞더라고요.(웃음)

- 대체적으로 느끼하고 짠 일본 음식문화에 빠른 적응을 했다니 대단합니다. 음식 문화 말고도 가장 큰 장벽이 바로 언어 문제일 것 같은데요.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선수들이 텃세를 부린다던지 하는 부분은 없었나요?
= 어휴, 말도 마세요. 텃세가 엄청 심했어요. 제가 운동하다가 한 번 실수하게 되면 무슨 말을 자꾸 하는데 그걸 알아들어야 뭘 고치던지 하겠는데, 도통 뭐라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하니 서로 답답했던 거죠. 말이 안 통하다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떨어졌고, 동료들도 많이 무시하고 그랬죠. 일본에 처음 건너간 1년이 제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어요.
-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처음에는 일본 선수들의 텃세가 있었군요. 그렇다면 어린 마음에 국내 복귀도 생각해보셨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 당연히 해봤죠. 주위에서도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시작하라고 많이들 그러셨고, 무엇보다 청소년 대표팀 때 함께 활약했던 기성용, 이청용 등 동료들이 K리그에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복귀를 고민을 했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제가 인생을 살면서 어느 것 하나 확고하게 자리 잡아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확 들더군요. 그때 마음을 다잡고 곧바로 책상에 앉아 일본어 독학을 시작했습니다. 반드시 해내겠다는 집념 하나로 말이죠.
- 아, ‘말이 통해야, 동료들도 마음을 연다’는 생각을 가지신 게로군요. 지금은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정도 지나니까 서서히 동료들과 의사소통이 되던가요?
= 음, 한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살짝 씩 들렸던 것 같아요.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는 게 아니라 혼자서 집에서 책을 보면서 독학하니까 시간이 좀 걸린 것 같기도 하고요. 어찌 되었든 6개월 쯤 되니까 서서히 귀에 일본어가 들렸고, 한 2년 정도 지나니까 동료들과 운동장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는 수준으로 향상되었습니다. 말이 통하니까 동료들도 하나, 둘씩 제게 마음을 열더군요, 무엇보다 일단 말문이 트이니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 결과적으로 약 2년 동안 독학한 일본어가 배승진 선수가 오랜 시간 일본에 안착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봐도 되겠네요. 끈기가 상당히 대단하신 것 같은데요?
= 어린 나이에 겪은 그 힘든 시기가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정말 축구에 대해 잘 알기 보다는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 밖에 몰랐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죽기 살기로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어려움과 서러움을 잘 버텼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고, 더 강해진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말 강한 멘탈을 지니셨군요. 그렇다면 당시에 운동장 안에서 동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했나요?
= 제가 일본어 말문이 막 터지던 시점에. 임대를 통해 자스파 쿠사츠라는 팀으로 둥지를 옮겼어요. 그때 오히려 제가 운동장에서 막 소리를 지르고, 훈련 시간에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몸싸움도 마저 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 있게 행동했던 것 같아요. 제가 먼저 마음을 여니까, 그쪽에서도 마음을 열고, 그게 운동장에서 또 나와서 서로 도와주게 되고 그랬어요.
- 일본에서만 7시즌 뛰었는데 프로팀 운영 및 마케팅 등 J리그의 전반적인 장점이나, 이런 점은 정말 K리그가 배울만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점은 없나요? (Gijune Yoon)
= 무엇보다 선수들이 어린이 축구 교실이나 지역 행사 등이 있으면 가서 축구도 해주고, 사인회도 해주는 등 지역 밀착 마케팅이 상당히 잘 안착되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경기 홍보를 위해 선수들이 직접 움직여서 학교나 백화점 등에 방문해요. 선수들도 귀찮아하거나 짜증내기 보다는 팀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우리가 이렇게 움직여야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편이에요.

- 일본축구와 한국축구의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그리고 솔직하게 본인 스타일에 맞는 리그는 무엇인가요? (이예찬)
= 압박의 강도 차이죠. 일본은 포지션별로 거리 간격을 중요시해서, 라인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훈련을 정말 많이 해요. 일본은 지역 수비를 주로 서서 압박이 좀 덜 한 반면에 한국은 맨투맨 전담 마크를 주로 사용해서 압박 수비가 상당히 강합니다. 아직은 저도 솔직히 J리그와 맞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7년간 일본 축구를 몸에 익혀 왔기 때문에 한국 축구의 압박이 아직은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제 서서히 한국 스타일로 고쳐가야죠. (웃음)
- 연습중이나 경기 중에 무심코 일본어가 나온 적은 없나요? (Kazuko Kakuyama)
= 하하하,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동료에게 뒤에서 상대팀 선수가 간다는 뜻으로 ‘위험해’ 라는 말을 하는데, 저도 모르게 일본어로 아부나이(あぶない)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웃음) 지금도 운동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무심코 일본어가 나와요.
- 일본에서 7시즌동안 활약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 아무래도 프로 데뷔골을 넣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죠. 제가 도쿠시마 보르티스에 있을 때 윤정환 감독님께서 지휘봉을 맡고 계시는 사간 토스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는데요. 당시 팀이 0-1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중반에 제가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당시의 짜릿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답니다.
- 제가 알기로 배승진 선수는 정말 많은 일본인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누가 있는지 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일본에서 뛰며 정말 많은 일본 팬 여러분들께 사랑을 받았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팬 네 분 정도를 소개해드릴게요. 가장 먼저 소개해드릴 분은 카즈코상(かずこ さん)이라고 제가 도쿠시마에 있을 때 응원을 보내주신 팬이세요. 카즈코상은 제가 요코하마로 이적한 이후에도 도쿠시마에서 사비를 들여 버스나 비행기 등을 타고 오셔서 훈련장, 경기장에 플랜카드도 걸어주시는 등 정말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소개해드릴 분은 오니시상(おおにし さん)인데, 이분도 제가 일본에 있을 때 항상 경기장에 오셔서 제 사진을 찍어 주시고, 따로 인화해서 사진첩이나 액자를 만들어서 선물로 챙겨주시고 그랬어요. 또 올 겨울에 인천이 기타큐슈 기라반츠와 친선경기를 할 때도 경기장에 직접 오셔서 제 마킹이 된 유니폼을 걸어놓는 등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세 번째로 소개해드릴 분은 나츠미상(なつみ さん)이라는 분인데요. 이분은 홈, 원정 구분 없이 거의 매 경기 경기장을 찾아 항상 태극기를 흔들어주시면서 저한테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셔서 기억에 남아요. 아시다시피 한국과 일본이 국가적으로 다소 민감한 상황에서, 일본 사람이 태극기 흔든다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감사하죠.
마지막 소개해드릴 분은 스즈키상(すずき さん) 부부인데요. 이분들은 지난 3월에 치른 전북과의 홈 개막전 때도 저를 보시겠다고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찾아오셨어요. 그날 제가 경기에 나서지 못해 얼마나 죄송했는지 몰라요. 대신에 사인볼을 챙겨드렸습니다. 그밖에도 거론하지 못한 팬들이 많은데, 그분들께도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 모든 팬들의 이름과 특성을 파악하고 계시다니 상당히 인상 깊네요. 이제 이야기를 한국으로 복귀하게 되는 과정으로 연결해볼게요. 일본에서의 7년간 생활을 마치고, 인천으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솔직히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보는데 맞나요?
= (긁적이며) 네, 남자답게 둘러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한국으로 복귀를 결정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제가 요코하마에서 회장, 사장, 감독, 선수단 등 모든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오죽하면 팀의 주장을 시키겠다고 했을 정도였거든요.(웃음) 솔직히 말해서 팀의 1부 리그 승격을 위해 조금 더 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정말 고심을 거듭한 끝에 한국으로 복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 솔직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제가 보기에 배승진 선수는 아직까지 일본에서 이루지 못한 꿈이나 미련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요. 훗날 다시 일본으로의 복귀도 생각하고 있나요?
= 물론, 생각은 하고 있죠.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지금은 제가 K리그에서 뛰고 있고, 인천이라는 팀을 위해 뛰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자리를 잡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노력해서 개인의 발전과 팀에 더 큰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 일본에서 쭉 뛰다가 올 시즌 처음으로 K리그에서 뛰게 되었는데 평소에 생각하던 K리그는 어떤 느낌이었고, 몇 경기 뛰진 않았지만 실제로 뛰어보니 기분, 느낌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나래)
= 일단 K리그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압박이 상당히 강한 것 같아요. 사실 J리거들이 바라보는 K리그의 이미지는 압박이 너무 강하고, 보통 저돌적인 축구를 한다고 박혀있어요. 그러다보니까 프리시즌에 K리그 팀과 연습경기를 하기 꺼려합니다. 마치 한국 K리그 클럽이 중국 슈퍼리그 클럽을 피하듯이 말이죠. 그밖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 최근 4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며 서서히 팀 내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입니다. 경기력도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이셨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팀 성적이 좋지 않아요. 이에 따른 스트레스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일본에 있을 때 대부분 강등권 팀에 머물렀어요. 요코하마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드릴께요. 당시에 팀이 약 2개월 동안 12경기 정도를 1승도 못하고 최하위에 머물면서 힘든 상황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인천과 같은 상황이었죠.(웃음) 그때 저는 힘들 때일수록 선수들이 더 똘똘 뭉쳐서 노력하고, 흔들림 없이 우리가 하고자하는 축구를 계속하면 언젠가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느꼈어요. 그렇게 한 경기 이기고, 두 경기 이기고 10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22위에서 4위까지 성적을 끌어 올리고 리그를 마쳤던 기억이 납니다. 인천도 마찬가지에요. 분명히 반전의 계기는 찾아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뼈있는 말이네요. 그렇다면 지금 인천의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 지금 우리 팀 분위기요? 좋아요, 정말 좋아요.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가 하나 되어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한 경기 이기는 게 어려울 뿐이지, 한 번 이기면 분위기를 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는 법이거든요. 쫒기는 것보다는 쫒는 게 심리적으로 편하다고 좋게 생각해요.(웃음) 우리 인천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 평소 김봉길 감독님께서는 배승진 선수에게 어떤 부분을 주로 주문하시나요?
= 김봉길 감독님께서는 저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수비력에 대한 부분을 추구하시면서, 전방으로의 빠른 패스 연결과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 등 경기 리드와 같은 부분을 많이 주문하세요. 저 역시도 그 부분을 항상 인지하고, 경기장에서 보일 수 있도록 훈련할 때부터 실전이라 생각하고 보다 도전적으로, 보다 자신 있게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현재까지 인천의 좋은 모습과 또한 고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시는 게 있나요? (김수경)
= 좋은 부분이라고 함은 다 같이 정말 열심히 한다는 부분인 것 같아요. 경기에 뛰는 선수들 뿐 아니라 2군 선수들까지도 정말 누구하나 빠짐없이 성실하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고칠 점은 아직은 완전치 않은 조직력을 말할 수 있겠네요. 비록 지금은 조금씩 안 맞아서 그렇지 조금씩 보완해나가고 있습니다. 톱니바퀴처럼 서로 하나 되어 돌아간다면, 팀은 자연스럽게 강해지게 되요. 우리 인천도 조금씩 힘을 받는다면 정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현재 팀 내에서 전북으로 떠난 김남일 선수의 대체자라는 인식이 강해요. 그에 대한 부담감이 없으면 거짓말일 것 같은데, 어떤가요? (류제성)
= 부담감이요? 엄청나죠.(웃음) 사실 제가 지난 동계훈련 때 2013시즌 인천의 모든 경기 영상을 노트북에 다운 받아서 봤습니다. 팀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이었죠. 영상을 보면서 특히 (김)남일이형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며 공부했어요. (김)남일이형이 가장 좋았던 부분이 수비 앞에서 커팅을 해주는 부분이더라고요. 특히 한 번씩 전방으로 찔러주는 날카로운 패스 연결도 상당히 인상 깊게 봤어요. 이제 더 이상 김남일 선수의 공백이 주위에서 이야기되지 않도록 제가 더 노력해야죠. 자신 있습니다.(웃음)
- 배승진 선수가 생각하는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팀은 어떤 팀이라고 생각하나요?(김정인)
= 인천이라는 팀은 하나 된 모습으로 똘똘 뭉치는 응집력이 좋은 상당히 끈끈한 팀인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정말 누구 하나 빠짐없이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은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상대방도 다가오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는 법이거든요. 인천 팀 동료들은 모두가 먼저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뿐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인천에 와서 축구 뿐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배승진 선수 본인이 인천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김상훈)
= 일단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는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면서 선발, 교체 구분 없이 리그 30경기에 출전하는 것이고, 팀 적인 목표는 일단 상위 스플릿 진출이 되겠죠. 그리고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국가대표의 꿈을 꼭 이루고 싶어요. 비록 제가 아직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목표를 크게 잡아야지만 스스로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는 법이잖아요. 제가 청소년 대표 이후 태극마크를 달아보지 못했는데, 인천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서 꼭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아보고 싶습니다.
- 태극마크를 달기 위한 배승진 선수의 꿈을 응원합니다. 지금 현재 인천에서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선수, 평상시 주로 붙어 다니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김종현)
=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선수는 뭐 함께 미드필더를 구성하고 있는 (구)본상이죠. 본상이랑 평상시에도 대화를 많이 가지면서 경기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평상시 가장 많이 붙어 다니는 선수는 (김)도혁이요. 도혁이랑 평상시에 식사도 많이 하면서 대화를 많이 갖는데, 제가 조언을 많이 구해요. 제가 중앙 수비수 출신이기 때문에 미드필더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거든요. 도혁이가 고맙게도 저한테 정말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 인터뷰가 서서히 말미로 향하고 있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질문을 해볼게요. 배승진 선수가 생각하는 본인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지은) = 음... 제 매력 포인트요? 튼실한 허벅지가 아닐까 싶네요. 평상시에도 친구들이 허벅지가 굵다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근데 지금 인천에서는 (설)기현이형이 계셔서 어디에 명함도 못 내밀어요.(웃음) 기현이형님은 정말 자기 관리가 투철하셔서 그런지 근육이 그냥 온통 말 근육이세요. - 배승진 선수가 제일 존경하고 좋아했던 롤 모델은 누구인가요? (김창현) = 홍명보 감독님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일본으로의 도전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홍 감독님의 자서전을 읽은 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홍 감독님은 어려서부터 제가 정말 동경했던 분이십니다. 일본 내에서 인기가 정말 많으세요. 홍 감독님 뿐 아니라 황선홍 감독님, 유상철 감독님, 안정환 선수 등 거의 한류스타급으로 일본 축구계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입니다.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응원을 당부하는 한 마디 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팀이 매번 비기고, 패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음에도 늘 경기를 마치고 응원석에 인사하러 갔을 때 욕이나 야유가 아닌 박수와 격려를 보내주시는 점, 특히 ‘할 수 있어! 인천’을 외쳐주시는 것을 보고 정말 너무 큰 감동을 받았어요. 팬 여러분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경기장 안에서 승리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하루빨리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서 승리의 기쁨을 다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할 테니 더 큰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도 팀을 위해 더 열심히 뛸 테니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축구를 시작한 이후 누구보다 정직하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매사 최선을 다해왔다는 배승진. 지난 7년 간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며 쌓아온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을 바탕으로, 위기에 놓여있는 지금의 소속팀 인천의 비상을 위해 그는 오늘도 축구화 끈을 강하게 동여맨다. 글 = 이상민 UTD기자 (power1360@hanmail.net) 사진 = 남궁경상 UTD기자 (boriwool@hanmail.net), 이상훈 UTD기자 (mukang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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