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0월 24일. 매탄고와의 전국체전 결승전 이후로 나는 축구화를 벗었다. 6학년 때부터 시작한 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가고 싶었던 나의 오랜 꿈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실력이 출중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축구를 하는 6년의 시간동안 4번의 큰 부상과 1번의 수술이 내 꿈을 가로막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하다. 내가 생각하는 선수시절의 나는 축구만을 생각하고, 100% 라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구보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 부분에는 내 스스로 자부할 수 있다.
2번째 부상을 당할 땐 여기까지인가 그만해야하나 울기도 많이 울고 고민도 많이 해봤지만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꿈을 이룰 수 없게 됐지만 거기서 포기했다면 아직까지도 행복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지금도 축구경기를 볼 때나 가끔 혼자 선수의 길을 계속 걷고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미련이 남지만... 중학교 땐 전국대회 우승, 리그 우승 등 많은 우승을 해봤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선 큰 대회나 리그 우승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부상으로 안 좋은 추억이지만, 돌이켜보면 난 고등학교시절이 더 행복했고, 배운 점도 많은 고마운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축구선수로서 팀을 생각하고,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가 되는 그런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것들을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교훈이 되는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물론 기회는 있었다. 전국대회 우승의 기회 말이다. 4번째 부상에서 회복하고 팀에 복귀했을 때, 감독님께서는 나에게 주장완장을 넘겨주셨다. 실력도 뛰어나지 않고 경기를 다 소화할 체력도 준비가 안 되어있는 나에게 주장이라는 책임감을 주셨다.
중학교 때 부주장을 맡긴 했었지만 주장은 처음이었다. 주장이라는 무겁지만 자랑스러운 책임을 가지고 나는 노력을 했다. '주장으로서 더 발전해야 팀도 발전하고 팀도 발전하면서 동료들도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우리는 시즌 마지막 대회인 전국체전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때 느꼈었다 팀이 하나가 된 기분을 모두 같이 우승을 향한 열정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한 경기, 한 경기 치르고 승리를 할 때마다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고 흘렀다. 그렇게 우리는 결승전에 올랐다. 인천 대건고 창단 이래 첫 전국대회 결승진출이었다.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나의 고등학교 마지막 대회이자 선수생활 마지막 대회, 마지막 경기가 결승전이 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경기를 앞두고 대건고 창단 첫 전국 대회 우승, 그 팀의 주장, 그리고 은퇴. 참 멋진 상상이 그려졌다. 행복하게 아무런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경기가 시작됐다. (이)정빈[인천대]이의 골로 우리가 1-0으로 앞선 채 전반을 마쳤다. 우승이 코앞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나 뿐 아니라 동료들 역시 자만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집중력을 유지하자고 했고 팀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권)로안[함부르크 SV]이가 쐐기 골을 넣었다. 너무 행복했다.
경기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상대에 한 골을 실점하고 난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빠져 나왔다. 주장완장을 다른 동료에게 채워주고 경기장을 나오면서 끝까지 집중하라고 동료들한테 소리치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우승할 수 있다고 좀만 버티자’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우리는 경기막판 동점골을 허용했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끝내 패배했다.
상대팀의 마지막 킥이 들어가자 눈물이 나왔다. 결과를 받아들이기 싫었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한참을 앉아서 울었다. 내 인생 마지막 경기인데, 첫 우승인데, 몇 분전까지만 해도 우승을 확신했는데 하는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눈물만 나왔다. 단상에서 시상식을 진행한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고 혼자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모든 게 허무하게 끝났다. 내 선수생활 마지막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해 아쉬움이 너무 컸다. 선수생활을 끝내고 나는 일반 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축구가 너무 좋은 나는 축구와 헤어질 수 없었다. 축구 선수로서의 꿈은 접었지만, 방향을 약간 바꿔 축구 행정가라는 또 다른 목표를 선정하고 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나를 키워준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어 UTD기자단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시즌 전 출정식에서 고등학교 친구 (이)태희를 인터뷰하는 데 기분이 이상했다. 프로도 프로지만 대건고 취재를 나갈 때면 매번 감회가 새로웠다. 감독님, 코치님들, 후배들을 이런 시점에서 본다는 게 신기했고 어색했다. 학업 등 개인 사정으로 자주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나는 이번 금강대기 취재를 위해 기자단 선배 (이)상민이형과 함께 강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금강대기는 내가 2학년 때(2012년) 3위로 입상한 대회라 좋은 기억이 있어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았다. 첫 경기는 상주 상무 산하 팀인 용운고와의 경기였다. 20일 일요일 오후 경기가 펼쳐졌다. 나름대로 큰 기대를 안고 봤지만 결과는 0-1 패배로 끝났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생각하고 바랐던 대건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경기에서 우리 후배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냥 약팀의 모습이었다. 난 아직도 전국체전 결승전, 팀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 어느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던 때 말이다.
그때의 기억이 커서일까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 하루 밤을 자고 나는 21일 오후, 2번째 경기 충남 기계공고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다시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를 앞두고 긴장된 모습으로 워밍업에 나선 후배들에게 다가가 격려의 메시지도 건네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후배들에게 파이팅을 넣어줬다.
잠시 뒤 경기가 시작되었다. 32강행 티켓이 달린 중요한 경기였다. 패하면 그대로 짐을 싸들고 인천으로 돌아와야 하는 운명의 경기였다. 대건고 본연의 모습이 나왔다. 후배들의 플레이가 전날과 확연히 달라졌다.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엄청난 집중력. 내가 바라던 팀의 모습이었다. 박형민, 김진야의 연속골로 2-0 깔끔한 승리, 32강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내 후배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취재를 진행한 2박 3일의 기간 동안 멀리까지 이동하고 잠도 많이 못자고 심신이 많이 피로하고 힘들었는데 그 피로가 싹 가시는 보람찬 순간이었다. 이런 정신력과 경기력이라면 첫 우승이 가능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기를 마치고 벤치로 하나 둘 들어오는 후배들을 향해 힘찬 박수와 고생했다는 말로 격려를 전했다.
경기가 모두 끝난 후, 이날 경기에 뛰지 못한 후배들을 데리고 임중용 코치님께서 나머지 운동을 시키셨다. 그때 내심 ‘축구화라도 가져와서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아쉬운 대로 구석에 가서 공을 가지고 혼자 놀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임중용 코치님께서 ‘의진이 거기서 뭐해 인마, 이리와’ 라고 하시면서 나를 직접 부르셨다.
코치님께서 내 마음을 알아주신 것일까? 그러한 코치님의 배려로 나는 30분 남짓한 시간동안 후배들과 어울려 레크리에이션과 같이 즐기는 운동을 함께 했다. 정말이지 선수 시절로 돌아간 듯 너무 행복한 느낌을 받았다. 기분이 너무 묘하고 행복했고 좋았다. 옆에 계시던 김이섭 코치님께서도 내게 농담을 던지시며 환한 웃음과 흐뭇한 미소로 나를 바라봐주셨다.
후배들과 함께 기분 좋게 땀을 흘린 나는 모든 취재 일정을 마치고 다시 복귀 길에 올랐다. 정말이지 여러모로 보람찬 2박 3일 간의 강릉 취재였다. 이번 취재를 통해 아직도 내 몸 속에는 축구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축구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을 다했는데도 아직도 축구를 좋아하는 내 자신. 내가 봐도 정말 신기할 정도다.
아무래도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 인생에 축구라는 것은 절대로 못 빼놓고 갈 것 같다. 축구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여전히 축구는 나에게 행복이다.
끝으로 우리 대건고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하고 글을 마치려 한다.
“자랑스러운 나의 후배들아, 32강전 대구 대륜고등학교와의 일전을 시작으로 앞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겠지만 ‘대건人’ 다운 모습으로 모두 이겨내리라 믿는다'
'그리고 임중용 코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꼭 되새기길 바란다. 코치님의 말씀대로 처음 축구화를 신었을 그때의 간절함과 절실함을 마음속에 품길 바래. 이번 금강대기에서 반드시 우승컵을 들어 올려 인천 대건고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위상을 드높이 세워주길 선배로서 바라고 또 바란다. 우리 후배들 모두모두 파이팅!”
구술 = 정의진 UTD기자 (nickool123@naver.com)
사진 = UTD기자단 사진자료실 및 내일은 K리거 제공.
* 정의진 UTD기자는 인천 유나이티드 U-15 광성중학교, U-18 대건고등학교 선수 출신으로, 현재는 피로 골절로 인하여 축구를 그만두고 축구행정가라는 ‘제 2의 꿈’을 가지고 힘찬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자신의 축구 인생을 책임져주었던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자 올해부터 인천 UTD기자단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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