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의 성원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9일 수원전서 은퇴하는 김학철
95년 K-리그 데뷔 후 2004년 인천구단 창단멤버로 합류
20년 뛰던 그라운드 떠나 지도자로 ‘제2의 축구인생’ 도전
인천 유나이티드의 수비수 등번호 6번 김학철(36). 오는 9일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난다.
2004년 창단 멤버로 인천의 푸른 유니폼을 입은 김학철은 1995년 대우에서 K-리그에 데뷔한 뒤, 284경기를 뛰며 보여준 ‘특유의 성실함’은 그의 상징이 됐다.
인천의 플레잉코치로 제2의 축구인생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김학철 선수에게 지금까지 걸어온 ‘축구인생’을 들어본다.
- 오랜 세월을 뛰던 그라운드를 떠난다고 하면 감회가 남다를텐데 은퇴 소감에 대해서 말해달라.
= 먼저 영광스럽게 은퇴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신 인천 팬들을 포함,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가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능력 있는 젊은 선수들이 들어와서 잘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은퇴를 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선수로서 이루고 싶었던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서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또 올 시즌 플레잉 코치를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선수들과 같이 있어서 그런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선수생활을 할 때 좀더 잘할 수 있던 경기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 현재 284경기 출전을 했는데, 300경기 출전에 대한 미련은 남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 올해 초에는 솔직하게 미련이 있었다. 300경기 출전이라는 매력. 그리고 기록에 솔직히 욕심이 났다. 하지만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버려야 할 것이 생기기 때문에 과감하게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지 300경기 출전에 대한 미련은 없다.
- 6개월 동안 플레잉 코치 생활을 해보았는데, 그동안 느낀 점이 있다면?
= 선수와 코치는 너무나 다르다. 선수는 나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코치는 선수들 위주로 생활해야 하고 무엇보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선수시절보다 더 큰 것 같다. 선수시절에는 ‘다음 경기에 잘해서 만회하지’ 하고 넘길수 있지만 지금은 경기에서 패배하거나 무승부를 거뒀을 때에는 ‘아쉬움’에 미련이 오래 남는다.
- 선수생활과 코치의 생활패턴도 많이 차이날 것 같다.
= 코치가 되니까 선수들 위주로 돌아가는 스케줄에 맞춰야하는 등 선수들보다 일찍 나와서 준비를 해야 하고 선수들보다 늦게 퇴근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가족들과 선수 시절보다 더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좋은 분들에게 편안하게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알아가는게 너무 재미있다.
- 축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 중 3때 시작을 했는데, 동네에서 축구를 잘해서, 한번 축구를 해볼까 해서 축구를 시작했다.
-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축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 남보다 한 참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기본기도 나는 지도자한테 배우지 않고, 친구들한테 배웠고, 다른 선수들은 저학년 때부터 경기를 뛰지만, 나는 한번도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국민대도 친구가 다른 학교로 가면서 생긴 자리를 테스트를 받아서 들어갔다. 그래서 그만큼 남보다 열심히 더 노력을 했고, 남들이 효과를 봤다는 훈련방법은 안해본 것이 없이 다 해봤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렇게 훈련을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 95년에 대우에 입단을 하며 프로무대에 데뷔했는데, 입단 상황 좀 설명해달라.
= 당시는 드래프트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그때 난 드래프트 2순위로 뽑혔다. 솔직히 난 프로에 갈 수 있는 이력을 갖춘 선수는 아니다. 남들은 청소년 대표다 뭐다 해서 대표경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난 그런 것도 없었고, 당시 국민대는 ‘축구부’라고 하기 보다는 ‘일반 학교 동아리’ 수준이었다. 그렇다보니 스카우트 담당자들에게 눈에 띄는 기회는 많지 않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프로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지금 인천구단 안종복 사장님이 나를 뽑았다고 들었다.
- K-리그 데뷔전과 부산 대우 시절에 가장 인상 깊은 경기를 이야기 해달라.
= 95년 4월 데뷔전을 치렀는데 지금도 기억하면 내 플레이가 너무 엉망진창이었다. 전반에 끝나고 교체를 당했는데, 진짜 축구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나한테 실망이 컸던 경기였다. 그렇게 첫 데뷔전을 치루고 나서, 5개월만에 다시 출전기회가 찾아왔다. 그때 일화(현재 성남 일화)가 화려한 선수층을 가진 팀이었다. 그 때 당시에는 3연패를 할 정도로 강팀이 아니었는가? 우리가 3년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한 팀이었다. 당시 동대문운동장에서 경기를 했는데, 5분도 안 되서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 부상 속에서도 교체 될 때까지 70분 이상은 뛴 것 같다. 그때는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할까. 정말 그때는 내 자신이 절박했다. 내가 기회를 잡은 것은 서정원 형을 잘 마크했기 때문에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 선배가 서정원 선수 마크를 담당했는데, 역할을 잘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교체로 들어가서 잘 막았는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정신이 없었다. 끝나고 나니까. 모든 사람들로부터 잘 마크 했다는 말을 듣고나서야 ‘내가 잘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 경기 이후로 내 특기인 맨투맨을 살릴 수 있는 포지션으로 변경을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출전기회가 늘기 시작했다.
- 2002년 시즌이 끝나고 부산에서 방출 되었을 때, 충격이 컸을 것 같은데.
= 그때 정말 축구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였다. 가장 힘든 것은 ‘가장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거였다. 그때에는 진짜 하늘이 무너진 듯 했다.
- 그러다가 대구에 입단을 하게 되었는데.
= 대구에 입단하게 된 것은 안 사장님께서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다. 당시에 코치직이라도 얻어볼려고 안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안 사장님께서 대구로 연결을 해주셨다. 솔직히 안 사장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실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평소에 연락 한번 못해서, ‘과연 내가 그 분께 부탁을 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염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장님께서는 나를 도와주셨다. 평생의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늘 감사하고 있다.
- 대구 시절은 자신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가?
= 그 시절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창단 첫 해 1년 동안 모든 선수가 합숙을 했는데, 그 합숙 때문인지 팀이 가족적인 분위기로 한 해를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 2004년 때 인천으로 이적을 했다. 인천으로 이적을 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 그때에는 정말 많은 고민을 많이 했다. 어려울때 나를 거둬준 팀 대구. 그리고 나를 프로로 데뷔시켜주시고, 나를 나락에서 건져준 안 사장님의 인천. 과거 친정팀이자 나를 방출했던 부산까지 세 팀이 나를 원했다. 그런데 인천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은인인 안 사장님께서 나를 원했고, 내가 필요로 한 팀 그러니까 출전기회가 많이 보장될 수 있는 팀에서 뛰고 싶었다. 사람들은 금전적인 이유로 생각하는데, 결코 금전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좀 불미스럽게 나오기는 했지만, 지금도 대구팀의 닥터와 몇몇 대구 팬들과는 통화도 하고 있다.
- 존경하는 지도자 모델이 장외룡 감독이라고 들었다. 장외룡 감독에게 배우고 싶은 점이 있다면?
= ‘인내’를 가장 배우고 싶다. 감독님은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기관리를 잘하신다. 이런 점을 배우고 싶다.
- 장외룡 감독의 지도력이 가장 빛난 것은 2005년 광주 원정이 아닐까 한다. 선수들한테 무릎을 꿇으면서, 선수들을 단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선수들은 모두 다 각자의 개성이 있다. 그 개성이 ‘도’를 넘으면, 팀워크가 깨진다. 그때 몇몇 선수들이 너무 개성이 강해서, 팀워크가 깨질 뻔 했다. 그것을 장 감독님께서 무릎을 꿇고 팀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그 이후로 선수들도 장 감독님을 존경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 근래 장외룡 감독에 대한 '경기 운영에 대한 비판'이 많다. 공격적인 축구보다 수비위주의 경기내용으로 팬들의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최근 팬들의 지적은 골이 잘 안 터져서 그런 것 같다. 감독님도 솔직히 많은 골을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 팀 전력이 그렇지 못하다보니, 골이 터지지 않고 답답한 경기로 이어지는 것 같다.
- 영화 ‘비상’이 자신에게 남겨준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가?
= 10년이든 20년이든 지나도 추억을 다시 볼 수 있고 감동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딸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 비상의 우는 장면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 그런 것을 묻나(웃음). 아무래도 감동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볼 때마다 눈물을 흘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많이 봐서 그런지 반응이 별로 없다.
- 아들이 국내 축구선수들 중 아빠보다 프랑스에 진출한 '박주영 선수'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섭섭하지 않나?
=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아빠가 제일 좋다고 한다(웃음). 섭섭하지는 않다. 나름대로 아들이 좋아하는 선수가 있으니까. 그것은 당연히 존중해줘야 한다고 본다.
- 아들에게 축구를 시킬 생각인가?
= 본인이 원한다면, 그리고 능력과 의지를 갖추었다면 시킬 생각이다.
- 최근 대구전 이후 울산전까지 4경기 연속 2실점을 하면서, ‘수비가 불안하다’라는 우려가 많았고, 전북전부터 광주전까지는 무실점으로 수비가 안정되었다는 말을 하는데 수비수 출신으로 어떻게 생각하나?
= 이 부분은 참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실점을 내주는 것은 수비수의 탓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선수들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윗선에서 제대로 압박을 못 해주다보니 수비수들도 수비할 시간을 벌지 못하고, 그러면서 능력이 있는 공격수들에게 실점을 한다. 이건 수비수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선수들이 잘해줘야 안정적으로 수비가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 수비수에게 필요한 자질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책임감이 아닐까 한다. 맡은 지역과 맡은 선수만큼은 철저하게 막아내겠다는 책임감이 우선 필요하고 수비에서 공격이 시작되는 만큼 수비수들의 공격전개력이 필수라고 본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텐데. 후배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 후배들에게는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고 싶다. 축구를 하다보면, 축구를 포기하고 싶은 고비를 만나게 된다. 그 고비를 만났을 때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10년동안 150명이 넘는 축구선수를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팬들에게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1년만에 짐을 싸가지고 나간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짧게 선수생활을 하지 않고 길게 프로에서 버티고 싶다면, '강한 정신력'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 지도자로서 어떤 선수를 키워내고 싶은가?
= 아직 지도자 수업을 받는 중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고비'를 만났을 때 그 고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인성, 성실을 갖춘 선수를 키워내고 싶다.
- 인천 팬을 포함, 축구팬들에게 어떤 선수와 코치로 기억에 남고 싶나?
= 코치는 지금 입문한지 별로 안되서 뭐라고 할 수 없고, 선수는 은퇴한 순간부터 잊혀진다고 하는데, 잊혀지기 전까지 좋은 이미지로 남았으면 좋겠다.
- 인천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많은 비판도 있었고, 많은 사랑도 주신 팬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팬들의 성원이 선수생활동안 큰 힘이 됐고 그런 비판과 사랑 속에서 한 단계 한 단계 나 자신이 성장해온 것 같다. 그런면에서 난 운이 좋은 사람이고, 행복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가 마음에 담아둔 말을 하고 싶다. "인천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글=박희수 UTD기자(wsunlcd@hanmail.net)
/사진=남궁경상 UTD기자(boriwo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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