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주 공모를 통해 창단 자금을 마련한 뒤 13번째 구단으로 출범한 인천 유나이티드가 K리그에 발을 내딛은지 올해로 어느 덧 11년 차에 접어들었다. 오늘날 K리그 시·도민구단의 대표 주자로 나서기까지의 지난 이야기를 앞으로 매주 수요일 총 11차례에 걸쳐 총 11주간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한다. <편집자주>새 도약을 꿈꾸며 활발한 선수단 개편 이뤄져두 번째 이야기. ‘2005년, 공포의 외룡구단의 기적‘ 편이다. 창단 첫 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인천 유나이티드가 새 도약을 꿈꾸며 서서히 예열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감독 대행 역할을 수행하던 장외룡 수석 코치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했다. 장 감독은 인천의 제 2대 감독으로 취임하며, 자신의 가진 바 역량을 모두 쏟아 붓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이어 새 시즌 준비의 통과의례인 선수단 개편이 활발히 이뤄졌다. 최태욱이 일본 시미즈 S-펄스로 떠난 것을 시작으로, 김현수와 김우재가 전남으로 트레이드 됐고,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드라간과 마에조노도 떠났다. 새 얼굴의 보강 또한 함께 이뤄졌다. ‘테크니션’ 서동원이 상무 제대 후 인천 유니폼을 입었으며, 아주대 출신 최효진이 루키로 팀에 합류했다.김현수가 떠나며 새로운 ‘캡틴’으로 임중용 임명초대 주장이었던 김현수가 한 시즌 만에 전남으로 트레이드되며 주장 완장은 주인을 잃었다. 팀을 추스르기 위해 빠르게 주장을 선정해야 했던 장 감독은 고심 끝에 임중용을 적임자로 결정했다.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지닌 ‘중고참’ 임중용이 주장 완장을 차고, 팀 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의 원활한 가교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다.장 감독의 제안을 받은 임중용은 주장직을 정중히 고사했다. 일선에 나서기 보다는 묵묵히 팀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장 감독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임중용에게 주장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이어갔다. 스승의 뜻을 어찌 어기리올까. 임중용은 결국 주장을 맡게 되었다. 임중용은 또한 장 감독의 권유에 따라 미드필더에서 중앙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했다.‘시즌 개막’ 무난한 출발 속 아기치·셀미르 영입개막을 목전에 두고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감바 오사카를 초청해 친선 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0-1 패배. 이날 경기가 이근호, 여승원, 이요한 등 새 얼굴들을 테스트하는 목적의 성향이 짙었다고는 하지만 패배의 찝찝함은 지울 수 없었다. 전기리그-컵대회-후기리그 순으로 진행된 전년도와 달리 2005시즌은 컵대회-전기리그-후기리그 순으로 일정이 진행되었다.시즌 첫 경기. 3월 15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컵대회 홈경기였다. 지난해까지 동료로 함께했었던 김현수와 김우재를 적으로 만났다.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던 후반 41분, 마니치의 크로스를 받은 황연석의 헤더골이 터지며 1-0 승리를 거뒀다. 첫 경기를 승리로 시작한 인천은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야스민 아기치와 ‘삼바 특급’ 셀미르를 데려오며 추가 전력 보강에 임했다.‘박주영 신드롬’ 잠재운 라돈치치의 화려한 부활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조직력이 영글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 인천은 4월 17일 FC서울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서울의 화제는 단연 ‘슈퍼루키‘ 박주영이었다. 박주영이 불어넣은 신드롬은 가히 엄청났다. 홈이든 원정이든 상관없이 박주영이 나타나는 경기는 기본 2만 명이 경기장에 운집했다. 이에 인천도 박주영을 이용한 홍보 전략으로 관중을 끌어 모았다.2만 명이 넘는 많은 관중이 경기장에 운집했다. 평상시 약 5천여명의 관중이 찾았던 것과 비교했을 때 무려 4배에 이르는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대다수가 인천보다는 박주영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인천으로서는 굴욕이었지만 어찌 보면 구단을 홍보를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했다. 따라서 선수단은 이를 악물고 경기에 임했다.경기는 박진감 넘치는 흐름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인천은 이날 3-2 짜릿한 펠레스코어 승리를 거두며 '난적' 서울을 물리쳤다. 2군에서 성실히 몸을 만든 라돈치치가 오랜만에 출격해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날 서울의 박주영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던 2만여의 관중들은 되레 인천의 재밌는 축구를 보며 감동의 박수를 치며 집으로 돌아갔다.‘달라진 인천’ 컵대회 막판 스퍼트로 기대감 상승수많은 관중 앞에서 짜릿한 승리를 챙긴 서울과의 홈경기를 기점으로 인천 선수단은 더 큰 강한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장외룡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부터 시작해서 선수단 전체가 정말 하나로 똘똘 뭉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원의 사령관’ 서동원도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 올려 하나, 둘씩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고, '외인' 아기치와 셀미르 역시 빠르게 팀에 녹아들며 팀의 인원으로 자리매김했다.4월 27일 대전 시티즌과의 원정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인천은 5월 1일 광주 상무(現 상주 상무)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15분 문전 혼전상황 속에 터진 라돈치치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기록했다. 비록 5월 5일 울산 현대와의 원정경기에서 0-1 석패를 기록했지만. 5월 8일 전북 현대와의 컵대회 마지막 경기를 셀미르, 서동원, 라돈치치의 골 세례에 힘입어 3-0 대승으로 마치며 팬들로 하여금 전기리그에서의 기대효과를 더욱 높였다.1승, 2연승, 3연승, 4연승... 전기리그 선두 질주컵대회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곧바로 그 다음 주부터 전기리그가 시작되었다. 인천은 포항, 울산과의 홈 2연전을 펼쳤는데 각각 최효진과 아기치의 선제 결승골에 힘입어 두 차례 모두 1-0 깔끔한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3라운드 광주와의 원정경기에서도 후반 막판 터진 노종건의 결승골에 힘입어 3-2 짜릿한 역전승을 기록, 쾌속의 질주를 계속해서 이어갔다.4라운드에서는 전남을 홈으로 불러 들였다. 경기 초반 남궁도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전반 막판 상대 수비수 이창원(現 포철고 감독)이 페널티 박스 내에서 라돈치치에게 파울을 범했고, 주심은 PK를 선언했다. 이미 한 차례 경고를 받았던 이창원은 경고 2회로 퇴장 당하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러나 아기치가 야속하게도 PK를 실축하며, 전반전을 0-1로 마쳤다.다행히도 인천은 수적 우위를 등에 업은 채 후반 이정수, 전재호, 마니치의 연속골이 터지며 3-1로 경기를 뒤집었고, 거짓말 같은 4연승으로 선두에 올라 전기리그 우승을 향해 전진해 나아갔다. 이후 인천은 부산전(1-1 무), 수원전(2-0 승), 대구전(1-1 무)에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막판 부천전(1-2 패) 패배를 기점으로 서울전(2-2 무), 전북전(1-2 패)까지 잠시 주춤한 흐름을 보였다.전기리그, 부산과의 진땀나는 ‘선두 다툼’ 펼쳐이러한 인천의 주춤한 흐름 속 뽀뽀, 루시아노, 다실바의 ‘삼바 트리오’를 주축으로 한 막강 화력의 부산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더니 기어코 인천을 제치고 선두 자리에 올라섰다. 최종전을 앞두고 인천이 대전에 1-0 승리를 기록, 부산은 서울에 1-2 패배를 기록하면서 양 팀의 승점 차는 3점차에 불과했고, 결국 전기리그 우승컵의 향방은 마지막에 갈리게 되었다.최종전에서 인천은 성남, 부산은 대전과 홈경기를 치렀다. 2위 인천(승점 21점)이 역전 우승을 일구기 위해서는 무조건 성남을 잡고, 대전이 1위 부산(승점 24점)을 잡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날 인천은 후반 종료 직전 터진 임중용의 PK 결승골에 힘입어 3-2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산이 대전과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승점 1점을 추가해 기다리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전기리그 우승컵은 부산에게 향했고, 인천은 아쉬움을 못내 감춰야 했다.프로 맞아? ‘전용 훈련장’ 없어 서글픈 떠돌이 생활전기리그 우승을 목전에서 놓쳤지만 선수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기리그에서 그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맘 놓고 훈련에 집중할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다. 문학경기장은 구단 소유가 아닌 시설관리공단 소유로 축구 뿐 아니라 럭비, 육상 등 타 종목 선수들이 함께 써야 했다.
맘놓고 훈련할 운동장이 없었다. 프로 구단의 운동 환경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1군 선수들은 천연잔디에서 훈련을 했지만, 나머지 2군 및 비주전 선수들은 인천대학교, 인천대공원 등의 맨땅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이에 구단 사무국 직원들은 매일매일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운동장 대관에 골머리를 앓았다.인천 부근에 천연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수소문해봤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경기도 가평 에덴스포츠타운이 후보군에 올랐다. 하지만 1시간 30분 정도의 훈련을 위해 인천에서 가평까지 왕복 3시간을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그마저도 장외룡 감독에게는 감지덕지였다. 장 감독은 마다하지 않고 'OK‘를 외쳤고, 선수들은 결국 매일같이 가평으로 출퇴근하는 악조건 속에서 묵묵히 운동을 이어갔다.후기리그 ‘원정 4연전’ 첫 단추 성공적으로 꿰어2005년 8월 24일 수요일. 후기리그가 개막했다. 인천은 폭우가 내리는 날 울산으로 원정을 떠났다. 전반 터진 셀미르의 페널티킥 선제골로 승리를 1-0 거뒀다. 이어 주말 이번에는 스틸야드에서 포항과 만났다. 전반 종료직전 서동원, 후반 종료직전 세바스티안의 득점이 터지며 2-0 완승을 기록했다.쉴 틈 없이 곧바로 성남 원정길에 나섰다. 전반 19분 아기치가 셀미르와의 멋진 2대 1 패스에 이은 정확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기분 좋게 앞서 나갔다. 하지만 연속되는 원정길에 선수들의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김도훈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결국 2-4 완패로 이날 경기를 마쳤다. 이후 약 10일간 재정비를 가진 인천은 전북으로 원정길에 나서 방승환의 절묘한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기록, 초반 원정 4연전을 3승 1패의 성적으로 마쳤다.당당히 통합 1위 등극... 창단 2년 만에 4강 PO 진출초반 스타트를 잘 끊은 인천은 차곡차곡 승점을 쌓아 올렸다. 전북전 승리를 시작으로 서울(2-2 무), 부천(1-0 승), 대구(1-1 무), 수원(1-1 무), 부산(3-2 승)까지 6경기 연속 무패 행진(3승 3무)을 이어갔다. 그리고 2005년 10월 30일, 인천이 4강 PO 진출확정까지 승점 3점을 남겨놓는데 이르렀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경기장에는 2만 5천명의 관중이 운집했다.상대는 하위권에 놓여있던 대전. 누구나 인천의 완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한 대전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후반 24분, 장경진의 백패스 미스가 공오균의 결승골로 이어지며 결국 0-1 패배를 기록하고 말았다. 아쉬움 속에 인천은 절치부심하여 전남 원정경기에 나섰고, 후반 41분 터진 라돈치치의 페널티킥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기록, 광주와의 최종전 결과에 상관없이 4강 PO진출을 확정짓는 쾌거를 맛보게 된다.다시 만난 부산, 전기리그의 아쉬움을 갚으리라전기리그 우승 부산, 후기리그 우승 성남, 통합 1위 인천, 통합 2위 울산까지 2005 K리그 4강 진출 팀이 모두 가려졌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인천의 4강전 상대는 공교롭게도 전기리그에서 치열하게 선두 다툼을 펼쳤던 부산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두말 할 것 없이 선수단은 물론이며 구단 사무국 직원들까지 잔뜩 이를 갈며 부산과의 일전을 기다렸다.2005년 11월 22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부산과의 4강전이 펼쳐졌다. 장외룡 감독은 부산의 수비 뒷 공간을 노리기 위해 기존의 ‘3-4-3’ 전술이 아닌 ‘4-4-2’ 전술을 쓰는 변칙 작전을 내세웠다. 그리고 그 작전은 그대로 적중했다. 생각지 못한 인천의 전술 변화에 부산은 우왕좌왕 헤매기 시작했다. 전반 17분 코너킥 상황에서 이상헌이 선제골을 기록했고, 후반 20분에 방승환이 쐐기골을 박아 2-0 승리를 기록하며 인천은 결승에 진출했다.이천수 원맨쇼 속, 허탈한 패배로 끝난 결승 1차전같은 날 펼쳐진 성남과 울산의 경기는 울산이 마차도와 이진호의 연속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이로써 2005 K리그의 우승 향방은 인천과 울산의 맞대결로 압축되었다. 창단 2년 만에 통합 1위 및 4강 PO진출에 모자라 결승 무대까지 오른 인천의 기세는 매서웠다. 더군다나 정규리그에서 울산에 2전 2승을 거두었기에 자신감은 더해졌다.2005년 11월 27일. 인천의 홈경기로 1차전이 열렸다. 인천의 쾌속질주의 마무리를 보기 위해 3만 5천여 명의 구름관중이 운집했다. 하지만 이러한 홈팬들의 열광적인 성원 속에서 인천은 결과적으로 이날 1-5 완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울산의 이천수가 원맨쇼를 펼쳤다. 이천수는 이날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완승을 이끌었다. 인천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준우승' 최선을 다한 시민구단의 아름다운 하모니1주일 뒤, 울산에서 마지막 2차전이 열렸다. 골득실이 4골 차로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사실상 우승컵은 울산 쪽으로 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천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전반전 라돈치치의 연속골로 전반을 2-1 리드한 채로 마무리했다. 작게나마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후반전 잔뜩 틀어막은 울산의 수비벽을 뚫기에는 모두가 지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시간이 모두 흘러 경기는 그대로 2-1 인천의 승리로 종료되었다.최종 전적에서 1승 1패로 동률을 이뤘다. 하지만 골득실에 의해 우승컵은 결국 울산의 몫으로 돌아갔다. 경기 종료와 함께 모든 인천 선수들은 그대로 그라운드에 주저 않아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고참’ 김학철부터 시작해서 ‘막내’ 이요한까지 진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장외룡 감독은 묵묵히 그라운드로 걸어 나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운 제자들을 감싸 안는 덕장의 풍채를 품겼다.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실패의 응어리를 품은 채 좌절 속에서 방황하던 이들이 인천에서 모여 또 하나의 거짓말 같은 신화를 세운 모습에 모든 이들이 힘찬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연말 K리그 시상식에서 임중용이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고, 장외룡 감독은 K리그 역사상 최초로 비 우승팀 지도자로서 올해의 감독상을 당당히 수상했다.[③편] '2006년, 더 밝은 내일을 향해 출발' 편은 다음주 수요일(6월 18일)에 업로드 됩니다.글 = 이상민 UTD기자 (power1360@hanmail.net)사진 = 남궁경상 UTD기자 (boriwo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