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의 전쟁이라고 손꼽히는 ‘해전’ 장군 진성욱는 30여년을 최전방에서 수 없이 많은 전투를 치러냈다.
그는 1545년 무과응시 준비 3년 만인 19세에 식년무과에서 병과로 급제했다. 첫 임지는 인천. 경험 없는 무관으로서는 파격적이게도 중요한 해전에 두 번이나 투입되었다. 하지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전투에서 패하면서 강등되어 변방으로 배치되었다.
그러기를 2년여. 마침내 그리던 인천으로 복귀한 그는 인생을 뒤바꿀 인물을 만나게 된다. 당시 수군절도사였던 상관 김봉길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발탁했다.
“진성욱을 지금 쓰기에는 정세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더 나은 장수를 불러들이시지요.”
“이미 수 없이 들은 이야기니 물리시게나. 나는 변란과 침입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 싸운 그에게서 가능성을 봤네. 내 그자를 믿고 중용할 것이다.”
당시 인천은 전란으로 인해 파괴될 대로 파괴되어 수군들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관 진성욱은 물러섬이 없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동안의 전투에서 단 한 번의 승리만을 거두었을 뿐입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했네. 남은 3번의 전투에 장수들과 함께 목숨을 걸겠네.”
그리고 그는 다른 열 명의 장수들과 13척의 배를 이끌고 함께 인천해전에 나아갔다. 진성욱은 맨 앞에 서서 배를 타고 기어오르는 적을 베고 또 베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말처럼 그의 활약에 3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수군절도사의 자리에까지 오른 진성욱은 인천을 무려 20여 년간 지키며 안위를 굳건히 하는데 일조했으며 그의 업적은 후대에까지 널리 칭송되었다.
* 본 내용은 가상 역사신문으로 실제사실과 다르니 양해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말]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공격수 진성욱은 2012년에 2경기에 2013년은 2군에서 훈련하다 올해 10경기에 출장했으며 최근 3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했다. 최하위를 맴돌며 강등의 위험에 처해있던 팀을 구해내는데 큰 몫을 해냈다.
글, 구성 = 최하나 UTD기자 (spring860@naver.com)INCHEON UNITEDMEDIA F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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