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해 동안의 이야기(1)] ‘가장 오랜 시간, 항상 인천과 함께’ 임중용 전력강화실장을 만나다
4367UTD기자단 뉴스UTD기자 성의주2023-11-29411
※ 2023시즌은 인천유나이티드의 창단 20주년입니다. 20주년을 맞이하여 구단 명예기자단 UTD기자단이 다양한 구단 구성원들을 만나 스무 해 동안의 이야기를 전달드립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인천에서 활약하며 레전드 반열에 오르고 현재 구단 전력강화실장을 담당하는 임중용 실장입니다.
20년, 강산도 두 번 바뀐다는 시간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언제나 인천과 함께 달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임중용 전력강화실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2004년 인천이 K리그에 참가한 첫해부터 지금까지 선수로, 코치와 감독대행으로, 이제는 전력강화실장으로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가장 긴 시간, 가장 다양한 자리에서 인천과 함께한 주인공입니다. 창단 20주년을 맞아 인천의 영원한 레전드이자 영원한 20번, 임중용 전력강화실장을 UTD기자단이 만나봤습니다.
Q. 시즌 마무리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선수들은 휴식기를 앞두고 있지만 전력강화실장으로서는 이제 시작인 시기일 것 같은데, 요즘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A. 지금 시즌 마무리까지 몇 경기 남지 않았는데, 우선 그 경기들을 잘 마무리해서 저희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게 이루어져야 내년에도 좋은 모습으로 선수단을 꾸릴 수 있으니까요. 다음 시즌도 좋은 퀄리티로 팬들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전력강화부의 일이자 목표라 우선 선수단이 시즌을 잘 마무리 해주기를 먼저 바라고 있ᅌᅥ요.
하지만 내년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상하겠지만 지금 나라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 인천은 시민구단이다보니 예산 측면에서 어려운 점이 많아요. 전달수 대표님께서는 좋은 퀄리티의 선수단을 유지하고 예산의 규모를 지키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예산 규모가 줄어들지도 초과되지도 않고 현재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산의 규모가 초과되지 않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규모가 줄어든다면 팀의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취지로 목표를 설정해서 대표님과 3년 동안 달려왔지만, 현재는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어서 내년에는 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전달수 대표님은 현명하신 분이고, 올바르게 판단을 하시기 때문에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어려움은 사실 매년 있었으니까요. 걱정은 되지만 일단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냉정하게 판단해서 내년 선수단을 꾸려야 하는 시기죠.
Q. 벌써 전력강화실장을 맡으신 지도 3년 차예요. 사실 갑작스러운 이동이었는데, 행정가로 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A. 행정가 쪽으로 가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안 했습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은 했죠. '나중에 지도자 생활까지 다 마치고 은퇴한 후에 지도자들에게 조언해주는 고문직 정도는 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요. 하지만 행정가로 일한다는 건 정식으로 입사 과정을 거친 직원들이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지 제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프로선수 출신 인물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이론이나 지식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떨어지니까요. 전력강화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대충은 알지만 모든 일을 파악하고 직접 하는 건 또 다르잖아요.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아예 생각도 안 했습니다.
Q. 하지만 역대 최고의 전력강화실장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계세요. 실질적으로 팀이 강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고요. 행정가로서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똑같은 답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통인 것 같습니다. 선수, 코치, 또 감독 대행까지 다양한 경험이 있다보니 현장의 생각을 잘 알게 되죠. 공감을 할 수 있으니 열어놓고 소통을 할 수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팀이 좋아질 수 있었던 건 모든 구성원이 진심으로 인천을 위해 자신의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계에서 일할수록 느끼지만, 국내외 다른 구단을 보면 잘 되는 곳은 항상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어요. 단순히 일을 잘한다는 걸 떠나서 팀을 위해 애정을 갖고 모두 하나가 되어서 자신의 소신으로 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생각보다 선수 출신도 행정가로서 중요한 요직을 맡아서 일하곤 하더라고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어색한 모습 같기는 한데, 팀에 정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소신껏 일을 하게 되면 구단이 발전하게 된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말하는 소신껏 일한다는 것은, 구단을 더 발전시키고 더 성장시키기 위해 자신의 판단대로 노력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유소년 지도자들의 할일을 뺏어버리고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면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이미 지도자들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고,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일을 뺏어버리면 할 일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당연히 유소년 선수들에게도 피해가 되고, 결과적으로 구단에도 피해가 가게 되겠죠. 이런 걸 생각해서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자신이 가진 소신대로, 애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구단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 전달수 대표님 체제에서는 '다른 좋은 팀 못지않게 체계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소신껏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우리도 제법 앞서나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렇게 좋은 구조 아래에서 모든 구성원이 잘해주는 게 팀이 잘 될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아요. 단지 저 혼자 잘해서 팀이 좋아진 건 아니죠. 이렇게만 간다면 인천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Q. 역시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게 큰 힘이군요?
A. 그렇죠. 유스도 마찬가지고요. 유스 시스템도 정말 올바르게 정착이 잘 되어 있어서 각 연령별 지도자들이 잘 가르치고 프로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어요. 단계별로 목표 설정이 잘 잡혀 있어서 잘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로도 나오고요. 인천은 유스 출신 선수 중 많은 선수들이 프로에서 데뷔하고 데뷔 후에도 출전 기회를 많이 가지며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결과 자체가 장점이 되기도 해요.
나 혼자만 잘해서 된 게 아니라, 각자 위치의 구성원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하고 있어서 잘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는 있지만 일단 팀 자체에서 모든 구성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일하면서 서로를 믿고 함께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쌓이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잘 될 수밖에 없죠.
Q. 말씀하셨던 것처럼 현장과 프런트의 중간 역할이잖아요. 사실 가운데에서 소통하는 사람이 제일 힘들기도 한데,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A. 저는 우선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현장에서 어려운 일이 많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구단의 생각을 듣기 위해 대표님, 국장님, 각 부서 팀장님들의 의견을 들어봅니다. 모두 들어봤을 때 어떤 것이 가장 우선적이고, 어떤 것이 가장 우리 팀에 이익이 되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판단을 합니다. 이 과정 자체가 많이 힘들어요. 어느 한쪽의 의견만 더 들어주면 어려움이 생기니까요. 현장의 불편함이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고, 구단에는 손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합의점은 찾다 보면 반드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 합의점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중간으로 맞추는 과정이 힘들긴 합니다. 그래도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에게 솔직하게 공유합니다.
저도 현장에 있을 때 ‘이건 정말 필요한데, 이건 구단에서 해줬으면 좋겠는데, 구단에서는 왜 이렇게 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나 의문이 들었던 걸 최대한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프로팀 지도자와 유소년팀 지도자들까지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예를 들어 5가지를 원한다면 팀에서는 실질적으로 2가지밖에 할 수 없는데 대표님과도 논의를 거치고, 최대한 노력해서 3가지 혹은 4가지를 들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는 대표님이 도와주시는 부분도 굉장히 많아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실장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전달수 대표님을 향한 존경심과 애정이 느껴져요.
A. 대표님이 벌써 5년째 대표를 맡고 계신데,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셔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전달수 대표님은 정말 본인이 가진 모든 걸 내어주면서 일을 하시는데, 저조차도 전달수 대표님 같은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고요.
인천 구단에 있으면서 누군가를 존경하고,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전달수 대표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정말 현명하신 분이기도 해서 대표님이 오래 계셔주셨으면 하는 게 요즘 제 유일한 바람이에요. 우리 인천이 실질적으로는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해서, 좀 더 마음을 다잡고 계셔주셨으면 좋겠다고 늘 말씀드리기도 합니다.
Q. 작년에는 P급 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하시고, 테크니컬 디렉터 코스도 수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밖에도 행정가로서 다양한 교육을 듣게 되면서 새롭게 배우는 것도 많으실 것 같은데요?
A. 사실 교육은 다니는 만큼 다 배우게 됩니다. 지도자 교육도, 행정 관련 교육도 모두 마찬가지예요. 교육에 참가하게 되면 팀들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실제 사례와 그를 통해 얻은 노하우를 듣게 되니까요. 그러므로 교육 같은 건 될 수 있으면 가서 들으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구단에 접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으면 기록해두고 기회가 될 때 실행으로 옮겨볼 수도 있고요.
Q. 전력강화실장으로 성공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으신 것 같은데, 사실 모든 성공이 과정까지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실패도 있고, 어려운 일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가장 어려웠던 때가 있다면 언제였나요?
A. 실질적으로 지금 전달수 대표님 체제에서 예산도 많이 늘어나고 상황도 좋아졌는데, 현장에서는 100%의 체감을 하지 못할 때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데 안 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이런 부분을 설득하는 것이 가끔은 조금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때도 있고, 해주지 못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꼭 변명처럼 들리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이 또한 소통의 힘으로 이겨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Q. 반대로 가장 잘했다, 정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있을까요?
A. 전력강화부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선수단 영입인데, 이 과정에서 잘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입을 위해 에이전트나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더 좋은 조건이 있음에도 우리 구단의 진실된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어주면서 최종적으로 인천을 선택해 줄 때가 그렇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는 '그래도 인생을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주려는 모습들은 정말 뿌듯하기도 해요.
물론 이런 것도 혼자가 아니라 현장에 있는 분들과 전력강화부를 비롯한 인천 구성원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사실 운동만 했지 관련 지식은 많이 없지만, 다른 분들이 많이 가르쳐주고 알려줬기 때문에 좋은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고, 상황마다 현명하게 대처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거죠.
Q. 그렇다면 그렇게 영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선수가 있을까요?
A. 우선 델브리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당시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실제로 보러 가지도 못하고 에이전트한테 피드백을 많이 듣지도 못해서 오로지 경기 뛴 영상만 보고 판단해야 했어요. (사무실 안의 TV를 가리키며) 이걸로 가장 많이 본 게 델브리지였던 것 같네요. 델브리지는 영입까지 4, 5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중하게 영입을 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의문도 가졌지만, 점차 인천에 적응해가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활약의 연장선으로 대표팀에도 소집되었던 걸 보면 정말 뿌듯합니다.
델브리지 외에도 어렵게 데려온 선수들이 사실 굉장히 많아요. 이명주, 신진호, 제르소... 정말 많죠. 에르난데스도 정말 극적으로 데려올 수 있었고요. 어려운 프로젝트를 굉장히 긴박하고 발 빠르게 진행해왔던 것 같습니다.
Q. 검증된 선수들도 그렇지만, 신인 선수들도 굉장히 잘 선발하는 것 같아요. 특히 올 시즌 신인 선수들은 굉장히 좋은 기량을 보여주고 실제로 팀의 승리를 가져오기도 했어요. 신인 선수들 영입 과정은 어떤가요?
A. 전력강화부의 팀장이 굉장히 많은 선수들을 알고 있고, 관심이 많습니다. 처음 프런트에 왔을 때부터 학년별로 유망주 리스트가 어마어마하게 축적이 되어있었고, 그걸 공유하면서 함께 체크해왔어요. 단기간에 보고 선발하는 게 아니라 구단에서도 꾸준히 지켜보고 직접 가서도 보고, 감독님께도 말씀드리면 감독님도 직접 보시기까지 하면서 우리 팀과 어울리고 발전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데려온 선수들이에요.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충분히 2, 3년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큰 선수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런 선수들이 있어서 인천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모두 아시겠지만 신인 선수들은 유소년 시절에도 알아주는 선수였고, 기업구단들도 함께 영입 경쟁을 펼쳤던 선수입니다. 그 경쟁에서 이겨서 데려온 거죠. 이건 칭찬을 해주시고 높게 평가해주셨으면 좋겠네요(웃음).
요즘 많은 응원을 받는 최우진 선수도 2학년 때부터 감독님께 추천했던 선수였습니다. 연령별 대표를 뛰었던 선수라 더 수월하게 지켜볼 수 있었는데 에이전트 쪽에서도 인천으로 올 수 있게 많이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죠. 최우진은 희소성 있는 왼발잡이기도 하고, 좋은 측면 자원이기도 한 만큼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Q. 20주년 인터뷰인 만큼 선수 생활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조금 시간이 흐른 이야기이기도 하고, 인천을 좋아한 지 얼마 안 된 팬들도 많으니 당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선수 생활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A. 인천은 창단 당시에 많은 기대를 하고 만들어진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창단 팀에는 한계가 있듯이 성적도 잘 안 나왔고, 그러다 보니 예산도 많이 삭감되고 환경도 좋지 않아서 열악하게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숙소가 없어서 가평도 가고, 결혼한 사람들은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고, 동계훈련을 1년 내내 하는 것 같았어요(웃음). 지금 인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죠. 그런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클럽하우스처럼 좋은 시설에서 후배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고 기쁩니다. 전달수 대표님이 큰일을 하셨죠.
아무튼 당시에는 환경이 그렇게 열악했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지만, 사실 그러므로 더 끈끈한 건 있었습니다. 저야 당연히 이 팀 아니면 죽을 거라는 각오로 했기 때문에 열심히 임했지만, 외국인 선수들까지 큰 애정과 소속감을 느끼는 건 쉽지 않은데 당시 외국인 선수들은 그 열악한 생활을 함께하다 보니 소속감도 애정도 강해져서 열심히 뛰었죠. 라돈치치, 셀미르 그런 선수들이 많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그때는 문학에서 프런트 직원분들까지 다 함께 밥을 먹고 그랬어요. 모든 구성원이 편하게 가족처럼 지냈죠. 지금 함께 일하는 분들 중에 당시 선수 때부터 친했던 분들도 있어요.
Q. 선수 시절 임중용을 수식하는 많은 단어가 있었잖아요. 그런 것 중에 가장 생각나거나 플레이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게 있다면 뭐가 있었을까요?
A. 미친소라고 그랬잖아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미쳐있었던 것 같아요. 팀에 신경을 많이 썼죠. 아내가 서운해하면서 항상 했던 이야기가 "당신은 인천밖에 없고, 우리 애들은 신경도 안 쓰고 가족은 아예 배제한다"는 말까지 했었어요. 사실 지금도 인천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긴 해요.
Q. 그럴 때는 뭐라고 답하셨나요? 변명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A 변명은 안 했죠. 변명도 못 할 정도였고.
Q. 당시 왔었던 다른 팀의 오퍼도 다 거절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A. 팀이 힘들 때 팬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으면서 함께 마음을 나누고, 구단 직원들과도 함께 생활하고 하면서 인천 자체에 정이 많이 들었어요. 내 팀이고, 내가 창단 멤버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다른 오퍼가 와도 떠나게 되더라도 좀 더 팀이 정착되고 더 발전했을 때 아름답게 떠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죠. 남들은 어떻게 선택하든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들 때 함께 해준 팀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떠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선수 생활을 순탄치 않게 해와서 힘든 마음을 잘 알거든요. 사실 그때 일본에서도 오퍼가 있었어요. 그 시절에 일본에서 오퍼는 드문 일이었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결국 인천에 남았죠. 갔으면 돈은 많이 벌었겠지만 인천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어요.
Q. 팀이 정착하고 아름답게 떠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어느새 인천과 20년째 함께 하시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운명 같기도 하네요.
A. 1년, 1년 하다 보니까 벌써 이렇게 된 거죠. 창단 20주년이라니 더 뜻깊은 것 같습니다. 선수 시절 등 번호도 20번이었으니까요. 최근 1년 반, 2년 들어 팀이 많이 좋아졌는데 새삼 의미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팬들은 강등이 되는 불안감 속에 경기장을 찾았는데, 이제는 2년 연속 파이널 A 무대에 진출했으니까요.
사실 이렇게 단기간에 올라올 수 있었던 건 모든 구성원이 함께했기 때문인데, 빠르게 올라온 만큼 쉽게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지금의 인천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팀을 흔들기보다 응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게 더 좋은 팀으로 발전해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올라온 만큼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기반을 천천히 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2005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영화 <비상>의 배경이기도 하고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환경도 좋지 않고 여러모로 열악했는데 어떻게 준우승까지 이뤄낼 수 있었을까요?
A. 창단 첫해에는 좋은 선수들은 많아도 잘 섞이지 않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사실 성적이 잘 나오기 힘들었죠. 2005시즌에 장외룡 감독님이 각각의 선수들을 잘 융화시켜준 게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각자의 성향이나 강점을 잘 파악해서 능력치의 최대를 끌어내려고 하셨죠. 프런트에서도 가진 게 없어도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했고요. 환경도 열악하고 상황도 안 좋다고는 하지만 다들 충분히 최선을 다했고 구단에서 그렇게 해주는 데에 선수들도 감사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팬들은 말할 것도 없이 열정적으로 응원을 해주셨고요. 더 이 악물고 더 열심히 뛰려고 했죠. 어느 한쪽만 노력해서 성적이 잘 나는 건 아니잖아요. 모든 구성원의 마음이 잘 맞았던 시즌 같아요.
Q. 다시 그때의 영광을 재현해야 할 텐데요. 인천의 우승은 언제쯤 올까요?
A. 시즌을 시작하면서 성적에 대해 상위권, 그다음에 우승까지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는 팀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 생각을 가져야만 보다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기도 하고요. 인천도 실질적으로 우승이라는 최종 목표를 두고 구체적인 목표를 잡아서 매년 성장을 시키고 발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발전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우리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믿어요. 현재의 인천은 그 미래를 위해 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레스터시티처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팬들도 응원을 해주고 인천 구성원 모두가 노력하다 보면 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선수 시절을 말할 때 문학구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숭의구장을 홈구장으로 쓴지 더 오래됐지만, 인천의 역사를 함께 한 곳이잖아요. 실장님은 선수 생활을 하며 문학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시기도 했고요.
A. 요즘도 프로팀이 문학경기장이나 문학 보조경기장에서 훈련을 하곤 하는데, 가끔 가서 보면 훈련했던 것부터 경기 뛰던 것까지 옛날 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 한번은 보조경기장에서 리그 경기를 했던 적도 있는데, 그때 기억도 나요. 굉장히 재밌었거든요.
숭의 너무 잘 만들어져서 현역 시절에 여기서 은퇴했으면 참 좋았겠다 싶었고 아쉽기도 했는데 그래도 문학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습니다. 문학경기장이 우리 인천이 리그에 참가했을 때 쓴 첫 구장이니, 기념으로 그곳에서도 한번 경기를 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숭의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경기를 개최하려면 예산이 또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가고 여러모로 어려운 점도 많아서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현장으로 다시 가게 됐을 때 문학에서 경기를 한번 치르면 정말 뜻깊겠다는 그런 생각은 있죠.
Q. 선수 생활을 하며 세운 인천 소속 최다 출전기록을 올 시즌 김도혁 선수가 갱신했어요. 종전 기록 보유자로서 소감도 궁금합니다.
A. 솔직히 말해서 최다 출전 기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후배들이 잘해준 덕분에 이 기록에 가까이 오니 사람들이 그에 관해 많이 물었는데, 당연히 축하해줘야 할 일에 대해 간혹 제가 막으려고 한다는 식의 이야기도 들려오더라고요.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정말 솔직하게 제 기록을 깨는 것에 대해 당연히 선배로서 축하해줘야 하는 게 맞고, 앞으로 더 잘 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제 본심을 가식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김)도혁이한테는 크게 축하해줬죠. 도혁이가 더 잘 알겠지만 오랜 시간 인천에 있으면서 다른 팀으로 떠날 수 있는 상황도 있었을 겁니다. 본인이 정말 현명하게 잘 대처하고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곳에 남는 결정을 했기 때문에 팀에서도 도혁이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그러다 보니 최다 출전 기록도 세울 수 있었던 거죠. 저는 당연히 도혁이가 그 기록을 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도혁이의 기록을 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환 구조가 생겨야 구단이 또 발전할 수 있지 않겠어요? 선수들이 떠나지 않고 오래 남으려 하는 팀이 된다는 의미잖아요. 오래 남아서 팀의 기둥이 되어주는 고참이 많아지고, 좋은 성적까지 이끌어줬으면 좋겠어요.
Q. 2011년 선수 생활을 마치고 독일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신 뒤에 2013년 여름부터는 대건고 코치로 다시 인천에 합류하셨어요. 2015년부터 2016년까지는 감독으로 대건고를 이끄셨고요. 유스 팀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독일에서 돌아왔을 당시 인천 대건고가 좋은 순위는 아니었습니다. 매년 성장은 하지만 명문 팀 반열에 오르는 팀은 아니었죠. 성적을 올리면서도 선수들과 어떻게 잘 생활하면 좋을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평범한 학생은 아니잖아요. 선수에 더 가깝죠. 특수한 직업이기도 하니 프로로서의 마인드를 어떻게 심어줘야 할까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서상 선수들이 코치나 감독을 많이 어려워하고, 훈련도 재미없어하고 그랬죠. 그런 걸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적인 부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여러 가지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엄했던 규율을 풀어주고 자유롭게 해줬죠. 이렇게 바꾸기까지 한 8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사실 코치로서는 화도 많이 났지만(웃음) 스스로 관리하는 법을 알았으면 했습니다. 그래야 나쁜 건 하지 말아야지 스스로 판단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직 어리다보니 일단 주어진 자유에만 몰두하느라 그런 건 잘 모르는 선수도 많았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까지는 풀어주면서 또 선을 넘으면 혼내기도 많이 혼냈죠. 더 엄하게 굴고 냉정하게 대하다 보니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 딴에는 불만을 말하던 게 많이 기억이 나네요. 아직도 저를 원망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해요.
Q. 약 3년 반을 대건고에서 보내시는 동안 대건고 성적도 정말 좋아졌죠. 리그에서도 1위를 하고, 굵직한 대회에서 준우승도 여러 번 했고요.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선수들 중 많은 수가 지금까지 프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나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을까요?
A. 지금도 잘하는 선수들보다는 마무리가 아쉬웠던 선수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제가 키워보겠다고 해서 우리 팀에 왔는데 경쟁에 밀려서 팀을 나간 그런 선수들이요. 안타깝고 마음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Q. 이후 대건고 생활을 접고 프로팀 코치로 오셨어요. 사실 팀 성적이 좋지 않아서 꽤 힘든 시기로 기억될 것 같아요.
A. 인천 대건고 감독을 2년 정도 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던 중에 프로팀 코치 제의가 왔습ᄂᆘ. 이기형 감독님이 강등을 면하고 새롭게 코칭스태프를 꾸리는 과정에서 연락이 왔죠. 처음부터 제가 후보에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저는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유스가 중요하기도 하고, 아직 대건고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제가 선택해서 팀에 들어온 애들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 아이들을 3년을 보고 데려온 거잖아요. 그 선수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프로팀으로 가는 걸 원치 않았어요. 계속 거절했죠.
하지만 결국 프로팀에 올라오게 됐는데, 이후에는 상당히 힘든 날들이었어요. 매년 힘들긴 했지만 프로팀에 들어간 직후 막내 코치로서 생활했던 게 잊히지 않고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 힘든 상황을 많이 겪어서 지금의 제가 좀 더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은 힘든 것도 많이 겪어야 성장하니까요.
Q. 정말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웃으면서 넘어가실 수 있는 건가요?
A. 힘들었던 걸 다 이야기하면 끝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귀중한 추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냥 많은 일이 있었다고 말하고 웃어넘깁니다.
Q. 감독 대행을 두 번이나 하시면서 마음고생도 굉장히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기자회견 인터뷰에서 늘 “인천은 강하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누군가는 매번 지고 있는데 뭐가 강하냐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직접 들었던 입장에서는 강하다는 말에 확신이 묻어있어서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그 확신이 신기하기도 했어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실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강팀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A. 강팀은 구단 프런트, 현장 스태프, 선수단까지 모두 이 팀에 대한 정체성과 애정이 많은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구성원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면 더 좋은 위치로 갈 확률도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각자 불만을 조금씩 품고 그걸 해결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분명히 발생하게 되는 거고요.
제가 감독 대행을 할 때 인천은 강하다고 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선수들이 팀과 팬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있었어요. 지도자들도 선수들을 선수 그 이상으로 생각했죠. 정말 내 동료, 내 제자라고 생각했고 가식적인 마음 없이 애정으로 생각과 고민을 함께 공유하면서 땀 흘리곤 했어요. 그래서 우리 팀은 절대 무너지지 않고 강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 보통 선수 은퇴 후를 축구 인생 2막이라고 하죠. 실장님은 지도자와 행정가 모두를 경험하셨어요. 직접 느끼시기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지도자를 하면 선수들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끈끈해지고 강해지는 게 있죠.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 한숨 쉬더라도 또 일어서려고 하니까요. 모든 경기를 거치면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또 강해지곤 합니다. 지도자들끼리고 돈독해지고, 상황이 좋지 않아도 긍정적이고 밝게 지내려고 했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행정가로서는 짧은 시간 나에 대해 많이 돌아보고 스스로 변하기도 하는 계기를 겪었습니다. 제가 일을 잘 할 수 있게끔 일깨워주고 많이 가르쳐준 구성원들한테도 정말 고마웠고요.
개인적으로는 행정가가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제 위치에서 저한테 주어진 일에 대해서만 최대한으로 노력하면 됩니다. 순수하게 축구만 생각하고, 선수들, 코칭스태프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공유하고 훈련하고 경기를 하고, 이런 패턴만 계속 있으니 여기에 올인하면 되죠. 그래서 사실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행정가로 이곳을 오고 나니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수도 굉장히 많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도 해야 하고요.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사회를 경험하면서 거짓말도 듣게 되고 진실된 마음도 듣게 되고 그러죠. 이 자리가 정말 중요한 자리구나 책임감도 느껴지고요. 그래서 더 올바르게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피곤하고 힘들 때도 많죠. 하지만 힘들어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고 있어요. 그냥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걸 잘하면 내 팀이 더 잘 될 수 있다는 그 희망만 생각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힘들지 않더라고요. 이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오히려 팬들이 더 힘들죠. 더 힘든데도 우리를 응원해준다는 생각을 하면 힘든 것도 잊게 됩니다.
Q. 선수 시절 개인 응원가를 보면 “우린 너를 영원히 노래해, 임중용"이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실장님의 20년을 돌아보니 가사처럼 정말 창단 이후 늘, 영원할 것처럼 인천과 함께 해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사실 20년 동안 있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평생 이곳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지만 저희 가족은 매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아무래도 정규직이 아니니까 거취 문제가 힘들게 하죠. 다른 축구인들도 ‘당연히 임중용은 인천에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할 테고, 팬들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라요. 스포츠 산업은 엄연히 경쟁이 계속 있는 곳이고, 책임도 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나갈 수도 있는 곳이죠.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저도 그렇고 가족들도 이 문제 때문에 매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을 합니다. 표현은 안 하지만요(웃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외부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해보자는 연락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인천을 떠나면 내가 잘못될 것 같고, 큰 좌절이 올 것 같고, 불안감도 들고요(웃음). 그렇게 1년, 1년 보내다 보니 이제 그런 연락도 없어졌습니다. ‘당연히 저 사람은 인천에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모두가 그렇게 바라보는데 현실은 다르다는 게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예요. 마음 같아서는 계속 있고 싶지만, 제가 그렇다고 해서 계속 있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사회생활이잖아요. 시기질투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지금 제가 제 자리에서 현명하게 일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Q. 인천을 향한 큰 애정이 느껴져요. ‘대체 인천이 뭐길래!’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애정에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처음에 인천에 왔을 때 저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나이도 거의 중고참이었고요. 하지만 우리 팬들과 단시간에 좋은 성적도 내고 하면서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어요. 이후에 팀이 어려워질 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다른 팀에 오퍼가 있다고 해서 나를 받아준 팀을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 팀이 인천이 맞는 것 같고,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죠. 그런 한 번 한 번의 선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예요.
매년 풍파도 겪었지만 팬들이 늘 힘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준 건 분명합니다. 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더 힘이 생기고, 떠나려는 마음이 생겨도 다잡을 수 있었죠. 제가 더 올바른 사람이 된 것도 팬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강해졌고요. 이제는 응원하는 팬들이 아니라 같이 인천을 사랑해주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렇게 제 이름이 인천 구단에 남아 있는 것도 모두 팬들 덕분이죠. 팬들이 좋다고 하면 그냥 그걸로 만족이에요. 사실 제일 기분 좋은 게 팬들이 즐거워하고 팬들이 인사해주는 겁니다. “이번 전력강화실장이 정말 인천 구단을 위해 노력해주는 것 같다, 고맙다” 이런 말을 듣는 거 하나만으로 어려웠던 일들도 다 참고 뿌듯하게 일할 수 있어요. 팬들 아니었으면 벌써 떠났을 수도 있죠. 그리고 저를 지지해주는 팬들도 있지만 저를 싫어하는 팬들도 분명히 있는데,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그런 사람들까지 돌아서서 저를 응원해주는 게 보입니다. 그럴 때는 뿌듯하죠.
Q. 20년 동안 인천에 있으시면서 정말 많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위기도 있었고, 기뻤던 순간들도 있었죠. 그 20년의 세월 중에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두 가지가 생각납니다. 하나는 선수 때인데, 2005년 플레이오프 부산 원정 경기였었죠. 그때 몸이 상당히 안 좋았는데, 출전하겠다고 해서 결국 경기를 뛰었어요. 그래도 이겼고, 챔피언 결정전 진출이 확정됐을 때, 그때 정말 기뻤습니다.
두 번째는 올 시즌 있었던 AFC 챔피언스리그 요코하마 원정 승리입니다. 경기장에서 전달수 대표님과 나란히 앉아서 “참 살다 살다 대표님과 이 구성원을 꾸려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승리를 보네요. 요코하마라는 팀을 이렇게나 멋지게 이기는 팀이 인천유나이티드라니, 너무 뿌듯하고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대표님도 그때 너무 좋아하셨어요. 그 모습이 잊히지 않을 것 같아요. 아이 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좋아하셨거든요. 참 저런 대표가 어디 있나 그런 생각도 했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AFC 챔피언스리그에 한 번 더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부상 선수가 너무 많아서 올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요.
Q. 인천이 지나온 20년은 참 다사다난했네요. 앞으로의 20년은 어떨까요?
A. 앞으로의 20년은 인천이 시민구단으로 남아 있을지, 아니면 기업구단이 되어있을지조차 상상이 잘 안 되네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20년 후에도 여기 응원 오는 팬들이 자식들 손을 잡고 응원을 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유럽 구단이 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하면 팬층이 더 두꺼워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지금도 아이를 데리고 와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참 감사합니다.
한 20년 후에는 제가 여기 없고, 나이도 한 칠십쯤 됐겠네요. 그때까지 살아는 있으려나(웃음). 그때 되면 전달수 대표님이랑 시축이나 하러 오고 싶습니다.
글 = 성의주 UTD기자 (sung.euju.shin@gmail.com)
사진 = 남궁경상 UTD기자, 김경태 UTD기자, 김하늘 UTD기자저작권자 – 인천UTD기자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