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의 무링요다. 그는 선수시절에 화려한 커리어가 없다. 하지만 최고의 팀에서 유능한 선수들을 다루고 있다. 팀의 자원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전술을 짜서 '최고의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나도 선수시절에 화려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왔고, 최고 지도자라는 꿈을 꾸고 있다.”
‘유럽명장’으로 통하는 첼시의 무링요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선수생활을 한다는 비난 때문에. 어린 시절 선수생활을 그만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지도자 수업을 받기 시작해서 후에 쟁쟁한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는 첼시의 감독에 오르게 된다.
인천유나이티드의 김시석 코치. 그도 무링요와 비슷한 면이 많다. 부평동중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차근차근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와 어느새 인천유나이티드의 코치가 되었다. 자신의 지도자 모델이 무링요라고 말하는 김시석 코치의 창단맴버로 3년 동안 지도한 인천유나이티드와 선수생활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지도자 생활에 대해서 들어보자.
김시석 코치가 보는 인천유나이티드Q.코치의 자리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A.쉽게 말해서 가교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감독님 보좌 잘하고 선수, 코치들의 생각을 감독님한테 전하고 감독님 생각을 선수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Q.코치로서의 어려운 점은 없는가?
A.선수들에게 생각을 전하는 게 어렵다. 선수들도 생각이 있고 나도 생각이 있고 모든 사람이 생각이 있다.
각자 다 생각이 있고 그 생각과 틀릴수가 있다. 생각을 전달을 했는데 전달한 의도가 달라졌거나 감독님 생각을 읽을때 어려운 점이 많다.
올해 전지훈련만 해도 어려웠던 점이 감독님이 바뀌면서 선수들에게 그 생각을 전해야 하는데 그 의도를 이해 시키고 전하느라 애좀 많이 먹었다.
그 이외는 선수들이 잘 이해해주는 만큼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Q.올 시즌 박이천 감독대행과의 호흡을 많이 걱정하고 있는데. 호흡은 문제 없나?
A. 없다. 굉장히 편하다. 박이천 감독님도 3년동안 팀에 있었고 나도 3년동안 팀에 있었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 문제없다.
Q.코치로서 3분의 감독님을 모셨다. 3분의 감독님 특색에 대해서 말해달라.
A. 로란트 감독은 선수를 보거나 꿰뚫은 눈이 좋은 편이다. 다혈질적인 성격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감독이다. 선수들의 일상생활을 관찰하고, 그 선수에 대해서 굉장히 파악을 잘했다. 규율을 세우면 그 규율에 따라서 선수들을 다스렸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이다 보니까. 문화적인 차이와 통역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 그런 점이 힘들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때에는 선수들을 각지에서 모았기 때문에. '내가 잘났다는 그런 생각도 강했다.' 그런 점이 로란트 감독으로서는 힘들지 않았나 한다.
장외룡 감독님의 경우에는 '냉정하다. 그리고 다정다감할 때에는 다정다감할줄 안다.' 한마디로 심리적으로 선수들을 잘 이해하고 잘 다스릴줄 안다.
박이천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선수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다.
Q.많은 선수들이 인천을 거쳐갔고 용병들도 많이 거쳐 갔다. 기억에 남는 용병이 있었을것이다.
A.세바스티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바스티안의 경우 재미있는게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당시 세바스티안은 월드컵 지역예선 때문에 차출을 많이 했는데 경기를 마치고, 올때마다 꼭 체력훈련이 있었다. 매번 체력훈련만 하니까.
굉장히 지겨움을 느끼었을것이다. 또 기억에 남는게 있는데, 고성 전지훈련을 갔는데 그때 설악산 대청봉까지 올라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시즌중에 산에 올라가는 것은 처음이었을것이다.
1000m 넘는곳을 올라가는데 표정이 장난이 아니었다.(웃음)
Q.인천을 이야기하면 젊은 선수들을 이야기 하지 않을수가 없다. 젊은 선수들이 인천을 떠났는데, 이 선수는 남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선수가 있었을 거 같다.
A.최효진과 이요한. 둘은 정말 아쉽다. 기본적으로 성실함을 갖춘 데다 두 선수는 궃은일도 다하는 좋은 선수들이었다.
경기 전에 팀 분위기를 띄워주는 선수들도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잘했다.
Q.인천에 들어와서 이 선수는 정말 많이 성장한 선수와 성장 가능성을 가진 선수에 대해서 말해달라.
A. 지금은 팀을 떠났지만 좋은 기량을 가지었던 효진이나 치우는 정말 성장세가 좋았다. 가능성을 가진 선수들을 지목하자면 이세주, 장경진, 윤원일, 이동원을 이야기 할수 있을거 같다.
이세주는 근성도 있고 적극성도 있어서 맘에 들지만 체력적인 면에서 많은 보완이 필요할거 같다.
장경진도 다 좋은데 스피드가 부족한 게 아쉽고, 이동원은 잘만 조련하면 좋은 선수가 될거 같다.
윤원일은 근성도 있고 적극성도 있는데 피지컬이 약한 게 아쉽다. 그런 면을 보완한다면 좋은 선수가 될 것이다.
Q.드래프트로 뽑힌 선수들의 기량은 어떠한가? 눈에 띄는 선수가 있나?
A.특출 난 선수는 없다. 아직 1군에 올라온 선수가 없으니까. 우리의 경우 가능성을 보고 뽑았다. 지금 당장 쓸 선수가 아닌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뽑았기 때문에 더 기다려봐야 할 거 같다.
Q.인천의 선수들이 40명이 넘는데 40명이 넘는 선수들을 챙기는 게 어려운 점이 많을 거 같다.
한 사람 한 사람 세심하게 신경을 못 쓰는 면이 아쉽다. 일일이 선수들 심리등을 체크해주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먼저 힘들고 개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고 개인훈련도 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고, 현실적으로 제일 힘든 것은 운동장 사용문제다. 여러군데를 돌아다보니까. 부족한 부분을 훈련을 시키는 게 쉽지가 않다.
Q.인천의 경우 중요한 경기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5년에는 대전전이 그랬고 2006년에는 광주전이 그랬다. 중요한 한 경기를 앞두고 많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A. 그게 인천의 한계라고 본다. 인천이라는 팀 스타일이 잘하는 팀한테는 강하고 약한 팀에게는 약하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거 같다. 강팀이니까. 긴장을 하게 되는데 약팀 에게는 약팀이라고 얕보는 그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선수들은 난 얕보지 않았다고 말할지 모르겠는데, 자신도 모르게 얕보게 된다고 본다. 제일 중요한 것은 경험부족 면도 있겠고, 테크닉등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게 크다고 본다. 대인마크를 붙이면 뿌리치는 방법은 테크닉이다. 근데 우리 선수들에게는 테크닉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아주 답답한 경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선수시절, 그리고 지도자생활, 인천유나이티드에 오다.Q.선수시절이 베일에 싸여져 있는데 선수생활에 대해서 말해달라.
A.내 선수생활은 많이 알려진거 같은데. 안 알려졌나?(웃음)
군대를 굉장히 빨리 갔다. 어차피 군대라는 곳은 가야하고 늦게 가는 것보다 빨리 가는 게 낫지 않는가. 그래서 빨리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택이 옳았던 거 같다. 군 제대이후 할렐루야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지금 할렐루야와 당시 할렐루야는 차이가 크다. 그때에는 신동아그룹이 지원을 해줄 때이기 때문에 환경 면에서 프로팀 못지않았고 거기에다 은퇴이후에는 직원으로 채용까지 해주었기 때문에 프로보다는 실업이 미래로 보면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
프로로 가면 내가 은퇴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실업은 확실한 진로가 있어서 더 좋은 선택이 아닌가? 은퇴를 하고서 신동아화재 보상과에서 2년 동안 일을 했다. 그리고 2년 뒤 그만두고 부평동중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Q.은퇴이후에 오퍼는 없었나?
A.지도자 오퍼는 많았다. 하지만 아내와 약속 때문에 다 거절했다. 지금 말하는거지만 아내가 ‘선견지명’이 있다. 내가 은퇴할 때 아내가 그러더라. “당신은 축구만 해 와서 사회경험이 부족하니까. 사회생활을 2년 정도 했으면 좋겠다. 지도자 생활이야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사회생활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지금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기회라는 게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지금 꼭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은 경험이었고 지금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약속대로 2년을 채우고 그만둘려고 하니까. 거기 보상지도부장이 집에다 전화를 해서 아내한테 그만두지 못하게 할려고 하더라.(웃음) 그 사람도 하는 말이 내가 나가는 사람 말려본적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그만두지 마라고 하더라.
그리고 나중에는 인사과에서 불러서 힘들어서 그만두냐고 물어보는데. 어린 시절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러냐고 하면서 내보내주더라.
난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꿈이 있었다. 지도자로서 성공하고 싶다. 가르친다는 거 그거 매력적이지 않는가? 어린시절부터의 꿈을 꾸었고 딱 그때 부평동중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부평동중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평동중 이후 다시 할렐루야로 갔다가 서울공고를 거쳐서 인천대학교에서 감독생활을 했다.
그때 할렐루야가 성적이 좋지 못했다. 성적이 좋지 못하니까.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거 같다. 그래서 날 찾은 거 같고. 그 이후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우승도 몇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IMF 만나면서 모든 실업팀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때 서울공고로 옮겼다가 모교(인천대)에서 연락이 왔다.
Q.인천 창단 맴버로 합류를 했는데. 학교에서 반대가 많았을 거 같다. 개인적으로도 고민이 많지 않았는가?
학교에서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고민은 없었다. 프로팀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국내최고가 아닌가. 그런 곳에서 배우고 싶었다. 내 인생을 보면 알겠지만 중학교부터 지도자생활을 시작해서 대학교까지 감독생활을 해왔다.
한 단계 한 단계 밟고 올라온 것이다. 이번에도 한 단계 올라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내가 지금보다 나이가 더 먹었다면 아마 도전하지 않았을거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어렵게 설득해서 인천유나이티드로 왔다. 그리고 지금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Q.인천유나이티드는 인천의 팀답게 인천 출신 선수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제자를 볼 때 마다 정이 아무래도 더 갈텐데.
A.각 프로팀에는 내 제자들이 있다. 성남의 조용형, 일본에서 뛰고 있는 김정우, 전남의 이준기등이 있고, 그리고 우리 팀에도 제자들이 있는데 (박)재현이, (안)성훈, (노)종건이, (유)유람이, (서)민국이등 많은 제자들이 뛰고 있다. 제자라고 해서 특별하게 대우하거나 그런 것은 없다. 어느 선수나 마찬가지다. 열심히 성실이 뛰고 적극적으로 뛰는 선수라면 좋아하지만 불성실한 선수는 제자든 뭐든 좋아하지 않다.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Q.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시기가 있었을텐데 그 시기에 대해서 말해달라.
지도자는 언제나 어렵다. 쉽거나 즐거운 것은 별로 없는 거 같다. 경기에 나갔는데, 정성을 들여서 전술도 짜고 준비를 다했는데 준비만큼 나오지 않았을 때 그게 가장 힘든 거 같다.
Q.선수들을 볼때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있다면?
A. 나의 경우 근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근성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근성이 있어야 발전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에 지능, 적극성, 성실, 스피드 등을 본다.
Q.프로에서 선수를 가르치신지 3년 정도 되었다. 그전에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가르치고 그랬는데 그 둘을 가르치는데 차이점이 있을 거 같다.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프로는 1년의 계획을 짜고 선수컨디션을 체크해야 한다. 또한 경기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에 비해서 아마추어는 대회가 끝날 때마다 컨디션을 체크하고 경기속도가 느리다. 한쪽이라도 속도가 떨어지면 상대 팀도 똑같이 속도가 떨어진다.
Q.프로팀 감독으로서 욕심은 없는가?
A.아직 난 배울게 많다. 나이도 젊고. 차근차근 올라갈려고 한다. 지도자를 시작 할 때, 누구나 최고 지도자를 꿈꾸는 것처럼 나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준비를 하고 있고, 아직은 때가 아닌 거 같다.
언젠가 내가 감독을 해도 되겠구나. 그런 때가 올때고 그때 운이 좋다면 기회가 올 것이다.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날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최선을 다해서 '좋은 지도자, 최고지도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올해 박감독님이 20년동안 고등학교 감독을 하셨는데 올해 좋은 성적을 얻어서 지도자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Q.인천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A. 언제나 열심히 응원을 해주셔셔 감사하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
글/사진 = 박희수 UTD기자(wsunlc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