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길 선장은 경력 15년의 베테랑이다. 그동안 가보지 않은 곳이 없고 피하지 못한 암초도 없으며 그 어떤 악조건에도 출항을 머뭇거린 적이 없는 그다. 하지만 이번 항해만큼은 달랐다.
그와 함께 손발을 맞춰온 일등항해사들이 대거 떠났고 예전보다 더 안 좋아진 자금사정으로 인해 정상적인 항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268일간의 장기항해라는 만만치 않은 일정에 급히 데려온 선원 몇 명은 갑작스런 복통과 구토증세로 몸져누웠다.
“포기하시죠. 이번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한 번이라도 선장님의 결정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가장 아끼는 박태민 일등항해사가 간곡하게 그를 말렸다. 김봉길 선장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시간을 달라며 자리를 피했다. 그의 이마에 움푹 팬 주름이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배가 부서지더라도 나는 키를 잡겠네. 떠나는 사람은 잡지 않겠어. 사실 차마 잡지 못하겠네.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나를 떠나도 좋아.”
그리고 결국 김봉길 선장은 봉길매직호의 닻을 올리고 출항을 지시했다.
3월 9일, 항해 1일차
파도는 잠잠해졌지만 12시간 넘게 교대하지 못한 선원들은 몹시 피곤해했다. 게다가 안재준 일등항해사는 아직도 다리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조금만 참아. 오늘만 지나면 어떻게든 내가 방법을 마련해볼테니.”
김봉길 선장은 그저 크루들을 다독이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7시간의 항해 끝에 첫 번째 도착지가 보였다. 하지만 항구에 정박하려는 순간 배 밑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겉면에 약간의 흠집만 났을 뿐 상태는 양호했다.
“자 이제 그럼 좀 쉬지.”
진땀 꽤나 흘린 김봉길 선장은 오랜만에 침대칸으로 돌아가 쪽잠을 청했다.
3월 15일, 항해 7일차.
전 날 항해했던 거리보다 조금 더 먼 거리를 향해 출발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바다. 김봉길 선장이 제일 싫어하는 날씨다. 사정거리 안에 암초가 있는지 없는 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극심한 추위에 파도마저 얼어붙어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선장님, 식량이 부족합니다.”
“뭐라고?”
김봉길 선장은 급히 달려가 보관창고로 달려갔다. 맙소사, 식량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정박하게.”
“네?”
“일단 정박하고 식량을 구해보도록 하지.”
김봉길 선장은 그때까지도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알지 못했다.
3월 23일, 항해 15일차.
급하게 식량을 구하러간 선원이 돌아오지 않아 이제 남은 건 감자 한 포대. 게다가 물이 얼어 배마저 움직일 수 없는 상황. 몇몇 선원들이 쇄빙을 시도해봤지만 두껍게 얼어붙은 바닷물은 꿈쩍하지 않았다. 김봉길 선장의 이마에 패인 주름이 더욱 더 선명해져만 갔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다리를 다쳤던 안재준 일등항해사가 복귀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아직은 안 되네.”
“통증이 전혀 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당직은 서지 말게. 충분히 잠을 자두라고.”
3월 26일, 항해 18일차.
식량을 구하러갔던 선원 네 명이 돌아왔다. 하지만 배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연료마저 점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아져야 할 텐데.’
3월 30일, 항해 22일차.
날씨가 조금 풀려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씩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목적지로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연료와 식량을 다시 보충할 수 없다. 김봉길 선장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선원 중 경력이 제일 오래된 설기현 일등항해사도 합류했다는 점이었다.
“이제 속도 좀 내보자고.'
4월 9일, 항해 30일차.
부족한 연료와 식량으로 인해 원래 목적지보다 가까운 곳에 정박하기로 했다. 그나마 올라간 수온덕분에 수월하게 항해할 수 있었다.
안재준 일등항해사와 설기현 일등항해사는 이제 당직을 번갈아 서며 밤새 배를 지킬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연료와 식량을 구해야한다.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최대한 노력해보자고. 이보다 더한 것도 겪은 우리야.”
글,구성= 최하나 UTD기자 (spring860@naver.com)
디자인= 강창모 UTD기자 (2nd_chance@hanmail.net) , 김수인 UTD기자 (suin1205@naver.com)